공천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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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당신 전화 못 받았소?』
『아니, 나 같은 놈에게까지 차례가 올라구』
『그렇게 딴전 부리지 말고 꿈이나 잘 꿔요. 그리고 전화 줄이 잘 꽂혀있나 없나 점검이나 잘하라구』
거리의 선거 선풍은 아직 눈에 띄는 게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이면 으례 공천이 화제거리로 된다.
요사이 정당마다 공천작업이 한창이다. 새삼 국회의원이 얼마나 인기 있는 직업인가를 느끼게 해준다.
『일생 중 한번은 누구나 어느 단계에 이르면 정치적인 야심을 갖게된다.』 이렇게 솔직이 말하면서 「프로·골퍼」로 유명한 「아널드·파머」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려 했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공화당의 공천을 받을 가망이 없어 대망(?)을 이루지 못했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정치가는 3개 조건을 갖춰야 하는 것으로 돼 있다. 『검(표)을 가진 사병』 『설(변설)』, 그리고『돈』.
현대에 와서는 이게 『지반』 『간판』, 그리고 『돈』으로 바뀌어졌다. 『간판』은 때에 따라 『인기』나 『명성』으로도 바뀌어진다. 소련이나 중공 같은 일당독재의 나라에서도 인기도는 높이 평가된다. 「노벨」 문학상을 탄 「숄로호프」나 여성우주비행사 「테레시코바」를 최고 인민회의대의원으로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중공의 탁구선수 장칙동도 당 중앙위원에 뽑힌 적이 있다.
그러나 인기도를 제일 중요시함직한 미국에서는 오히려 만만치가 않다. 우주 비행사 「존·글렌」은 64년·70년 두 번 다 「오하이오」주 상원 예비선거에서 떨어지고 74년에야 겨우 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공천으로 재미있는 것은 영국이다. 여기서는 후보자가 신청하면 지구당 위원회에서 후보자선정위원회를 열고 몇 월 며칠에 면접시험을 할 터이니 부부동반으로 나오라는 편지를 보낸다.
이 면접시험에 합격한 후보자 5명 정도가 다시 연세시험을 받는다. 이때 각기 30분씩 연설을 하면 시험위원들이 채점을 하여 정한다.
이때는 아무래도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사람이 유리하다고 한다. 지역구에서만 살고 있는 사람은 나라전체의 정치를 잘 모르고, 지역구의 이해에 너무 얽매이게 된다고 보기 때문인가 보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무래도 『연줄』이 한목 톡톡히 본다. 특히 여러 갈래의 파벌로 갈라져있는 정당에서는 밀어주는 『줄』이 없으면 아무리 명사라 해도 소용이 없다.
또 하나 중요한 평가의 기준은 공헌도다. 물론 당에 대한 공헌도를 말한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공헌도 내지는 충성도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정당정치에서는 당연한 일이라 하겠지만, 투표자들이 보기에는 좀 어색할 경우도 있다. 어쨌든 공천을 받으려고 오랜 공작을 다해 온 후보자들의 일희 일우도 며칠이면 끝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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