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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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신공영·신 반포 「아파트」에 사는 한 노인이 「엘리베이터」에 18시간이나 갇혀 있었다. 밤새껏 고함을 질렀지만 그 소리는 누구의 귀에도 닿지 않았다. 비상 「버튼」도 소용이 없었다. 추움과 두려움.
독일어에 「토르실루스·파니크」(Tor-schluss-Panik)라는 말이 있다. 폐문공포. 이를테면 문이 잠긴 공원에 혼자 남은 사람. 바깥에서 잠긴 「아파트」에 혼자 남은 아이. 이들이 품는 공포나 불안을 무고 그렇게 말한다.
실제로 독일에선 언젠가 「아파트」에 혼자 사는 노인이 죽은 것을 훨씬 뒤에야 우체부가 발견하는 일이 있었다. 서구사회에선 능히 있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제도의 문제다. 우리의 경우는 이 두 가지 문제가 모두 겹쳐, 점차 노인의 생활환경은 사회문제로 부각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최근 TBC-TV의 대하 「드라머」『어머니의 강』에서 노인의 대화 가운데서도 충격적인 대목이 있었다. 전원주택을 벗어나 「아파트」생활을 경험한 노파는 이렇게 한숨 짓는 것이었다.
『「아파트」는 바퀴벌레나 살집이더군』-.
그 노인은 자신의 습관과 상식과 형편으로는 「아파트」가 「사람이 사는 곳」같지가 앉았다. 결국 그 노인은 귀향을 하고 말든가…. 전원의 초가삼간으로.
보기에 따라선 지나친 감상 같지만, 그러나 노인들은 깊이 공감을 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의 주거생활에 일대 변혁을 강요하고 있는 「아파트」란 어린이나 노인들에겐 결코 낙원이 아닌 것 같다. 단절위주의 공간, 자연부재의 환경, 편리보다 기능이 앞선 구조물, 「리빙·룸」중심의 생활방식….
한 평생을 바로 그 반대의 상황에서만 살아온 노인들에겐 하나같이 두렵고 역겨운 일들 뿐이다.
바로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는 「아파트」생활의 한 역설적 단면 같다. 비상 「벨」어 연결된 텅 빈 기관실, 「버튼」들의 영문표기, 인간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비정.
우리의 「아파트」문화는 흡사 「폐문문화」인 것도 같아 더한층 어설프고 무서운 생각조차 든다.
필경 그것은 서구의 생활양식을 그대로 우리생활에 옮겨놓은 우매함에도 원인이 있다. 더구나 편리와 생활 환경을 외면한 기능, 그것만을 흉내낸 것에 문제가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것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터무니없는 「붐」현상과 그것을 악용하는 악덕업자가 빛은 부작용이기도 한 것이다.
바람직하기는 주택 당국이 충분한 연구와 성의로써 한국인의 생활감정과 습관에 맞는 모범 「아파트」를 세우는 일이다.
「엘리베이터」속에 갇힐 노인과 어린이들은 앞으로도 더 있을 것 같아 걱정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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