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없는 주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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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등 대도시의 담장은 지나치게 위압적이고 폐쇄적이다.
성벽처럼 높은 「시멘트」나 벽돌 담장에 철조망·유리조각 그리고 쇠창살까지 설치해 그 몰골은 마치 작은 요새를 방불케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둑을 막아야겠다는 과잉된 피해의식과 남에게 자기 집안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오래된 사회관습 때문에 마치 그렇게 하는 것만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세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앞으로 신축될 모든 주택의 담장을 1·5m이상 높이지 않도록 규제하고, 철조망·유리조각·쇠창살등의 설치도 일체 못하게 할 방침이라고 한다.
주택신축때 이를 위반하면 준공검사를 해주지 않을뿐 아니라 건축주를 고발하는등 강력한 법적 제재도 가할 모양이다.
담장높이가 1·5m 이하가 되면 보통사람의 키보다 약간 낮아 집안이 훤히 들여다 보일 것이며, 따라서 그안에 정성들여 가꾼 정원이나 꽃밭이 있다면 주택가 전체의 미관이 한결 나아질 것이다.
서울시의 이런 방침은 도시미관이나 경관을 살리고 나아가서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재한 상호불신감을 제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찬성이다. 이상적으로 전개되기만 한다면 1·5m로 제한된 담장도 실상 필요가 없게 될 것이고, 서로 믿고 사는 사회가 이룩됨으로써 국민생활의 명랑화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외국의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무릎 높이도 안되는 야트막한 나무 울타리에 온통 푸른 녹지대의 주택도 주택가에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싯점에서 도둑이나 강도등 방범상의 안전이 얼마나 보잘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울타리가 높고 쇠창살이나 철조망이 잘돼있다고 해서 도둑이나 강도에 절대 안심 할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범인의 범행수법이나 지능이 나날이 악랄해지고 잔인해지고 있기 때문에 고층 「아파트」나 높은 울타리로 완전 폐쇄된 주댁일수록 완전 범죄가 가능하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될 상황이다.
요즘의 절도나 강도사건이 대낮에 많이 발생하며 이웃과의 철저한 차단때문에 신고나 구원조차 받기 힘들어 처참하게 당하기만 하는 경우가 그 좋은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불의의 화재때도 방범만을 생각한 쇠창살 때문에 인명구호에 시간이 걸려 고생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쇠창살이나 철조망의 설치유행은 예부터 내려온 것은 아니다. 도둑이 들끓는 어지러운 세태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가기만이 피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마지못한 자구책으로 생겨난 자위 시설이라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이런 점에서 당국은 울타리 낮추기를 권장하기에 앞서 울타리 없이도 안심하고 살수 있는 치안확보와 서로 믿고 사는 명랑한 사회 분위기의 조성에 힘쓰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에 관련하여 덧붙이고 싶은 것은 신축건물의 담장높이를 일률적으로 제한할 것이 아니라 구획정리에 의한 일정구역의 고급 주택지를 시범지역으로 선정, 행정지도로 실시, 확대해 나가는 방안이 보다 더 바람직 하다는 것이다.
정원수나 잔디를 가꿀 뜰조차 없는 주택에 담장만을 낮게 한다면 미관상으로도 털빠진 닭의 꼴이 아닐까. 최소한도 일정한 평수 이상의 전용 주거지역에서만이 가능하며, 이웃간의 생활수준·교육정도등도 울타리 없애기에 커다란 문제가 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담장의 높이는 곧 그나라 사회의 신용과 협동의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이웃간의 담장없는 주택을 갖기 위해서는 자신이나 한가족의 노력만으로 힘들며 이웃 서로간의 깊은 이해 증진이 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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