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데기」에 아들 잃은 아버지|치료 거부 울분 터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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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저는 이번 번데기 집단 식중독 사건에 주용이를 잃은 못난 애비입니다. 아직도 병원에서 숨가빠하는 정선이를 보면서 안타까운 호소를 해봅니다. 뒤늦게 40세에 얻은 두 아이들은 저에게 생명처럼 소중한 자식들입니다.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이 자식들만은 저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늘 고기 한근 못 먹여 미안하던 터에 귀가 길에 사다준 번데기가 화근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때는 다만 두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흐뭇할 뿐이었습니다. 잠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난 주용이가 배아파 우는소리에 놀라 밤길을 헤매며 병원을 찾았으나 인술은 매정하기만 했습니다. 초라한 행색을 보고 『입원실이 없다』 『입원 보증금부터 내라』는 윽박질에 병원 문턱도 밟지 못하고 3시간을 허둥거릴 때는 제가 먼저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버린 주용이를 내려놓으며 이 사회의 비정에 몸서리쳤습니다.
비위생적으로 처리된 식품을 아무 생각 없이 파는 장사꾼. 가난한 사람의 등을 미는 병원.
이들의 무책임과 비정이 또 다른 주용이를 만들지 않을까 두렵기만 합니다. 당국의 납득할 만한 조치를 기대할 뿐입니다. <김희철·서울 도봉구 미아1동 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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