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코드'에 맞는 노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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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4월 7일자 민주노총 홈페이지(www.nodong.org).

제일 위에 큼지막이 '노동자의 미래, 노동자의 희망'이라는 문구. '성명/보도자료' 셋째줄은 '파병안 국회 통과 규탄 성명(04/02)'. 바로 밑의 '주요 이슈' 두번째는 '한국군 단 한명도 이라크로 못보낸다'.

시위 현장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국회 파병 결의 뒤에도 반전 투쟁 몰아칠듯 …투쟁의 중심은 국회를 겨냥했던 지금까지의 방식에서 광범위한 현장 투쟁 준비와 …'.

밑으로 좀 더 내려가면 '특집'이다. '노동자 반전 투쟁, 계속 전진이다'라는 제목으로 '현장 추스르고 다시 한판 붙어보자 …학살자 노무현!' 등 시위 현장에서 외쳤던 구호를 전하고 있다.

같은 날짜 미국 노동자총연맹-산별노조회의(AFL-CIO) 홈페이지(www.aflcio.org).

톱뉴스는 '3월에 일자리가 더 줄었다'다. 바로 오른쪽 '행동에 나서자'의 첫번째는 '부시 대통령에게 말하자. 근로자 가구엔 초과수당이 매우 중요하다고'다. 왼쪽 밑 '현장에서의 권리'로 가봤다. '(예비군으로서) 군에 소집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가 가장 위에 올라 있다.

사이트만 보면 민주노총이 더 진보적이고 인도적이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한다. 반면 AFL-CIO는 '의식'도 없고 요즘 '코드'와도 안맞는다.

미국이 전쟁 당사국이고 자국 이익이 우선이라지만 너무 했다. 전쟁을 두고 고작 일자리 걱정에 초과수당 이슈라니.

그나마 전쟁 관련도 뭐? 군에 소집될 때의 권리에 대한 안내? 이거 그 대통령에 그 노조 아닌가. 그러나 세상에는 다른 시각도 있으니 탈이다.

노조는 원래 무엇하자고 만든 단체지? 뭐니뭐니해도 노조원들의 이익이 첫째 아닌가? 그렇다면 민주노총과 AFL-CIO 중 어디가 더 노조다운가.

노무현 대통령은 반전 여론을 무릅쓰고 파병안을 국회에서 처리해달라고 호소했다. 국회는 논란 끝에 파병안을 의결했다. 다 '국익'을 위해서였다.

북핵 문제도 있지만 경제적 국익도 큰 고려 대상이었다. 그 경제적 국익의 제일 큰 수혜자는 근로자다. 경기가 더 가라앉고 물가가 오르면 봉급생활자와 저소득 계층이 가장 큰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정규직보다 계약직이 더 큰 타격을 입는다.

만일 민주노총이 아니라 '민주평화연대' 또는 '평사모' 같은 단체라면 또 모르겠다. 그들은 자국 근로자 이익과 같은 '작은 일'보다는 세계 평화와 같은 '큰 일'을 위해 모였을 테니까.

그러나 민주노총이 파병을 반대한다? 더구나 전국 1천3백만명 근로자의 4.9%인 64만3천여명의 근로자들만을 대표(2001년 말 기준)할 뿐인 민주노총이?

AFL-CIO도 노선이 달라지곤 한다. 1995년에 존 스위니 회장이 당선되면서 종전의 우파적 노선에서 벗어나 사회운동가.학생들과 손잡았다. 그러나 근로자 이익 최우선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반대하고 후진국의 노동 조건을 문제삼는 것도 다 자기네의 '당장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베트남 전쟁 당시엔 애초 전쟁 지지였다.

이번 이라크전도 처음엔 유엔을 통한 무장해제를 주장하며 미국 단독의 전쟁을 반대했으나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보다시피 위와 같은 태도다. 계속 '경제 걱정' '일자리 걱정'인 것이다.

노동계가 근로자의 이익에 맞게끔 노동법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노동계가 파병 반대나 국회의원 낙선운동에 나서는 것은 소비자단체가 수입개방을 반대하는 것과 같다.

김수길 기획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