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後 경제 '짧게 웃고 길게 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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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종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이라크전쟁 이후 미국과 세계경제의 향방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단기적으로 전쟁은 호재=전통적인 산업사회에서 전쟁은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군사비 지출이 늘면서 공장 가동률이 늘어나 경제를 띄우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전쟁은 상대국의 건물과 장비를 부수고 파괴하는 것이지만 자국과 주변국의 과잉설비를 순식간에 해소시키는 수요 증대 효과를 갖는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BW)는 최신호(4월14일)에서 단기적으로 미국 경제가 이라크전으로 혜택을 볼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4천5백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의 군사비 지출이 미국 경제를 끌어올릴 것이란 얘기다.

군비 지출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지난해 3.4%에서 올해는 4.1%로 늘어날 전망이다. BW는 올해 미국 GDP 성장의 29%는 군비 지출 덕분이라고 추정했다.

또 안보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경찰.소방수.경비요원 등 보안 서비스 업종에서 일자리가 늘어날 전망이다.

BW는 1990년대 전체 취업자의 1.8%에 불과하던 보안 서비스업의 취업자 비율이 현재 2%로 늘어났다고 추정했다. 취업자수로는 30만명이 더 늘어나 실업률을 0.2%포인트 낮췄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후(戰後) 경제의 복병이었던 물가도 지금은 걱정거리가 못된다. 식료품과 석유류를 제외한 핵심 물가 상승률은 현재 겨우 1.5%선에 불과하다.

이 같은 이유로 BW는 모건 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가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밀튼 프리드먼도 낙관론을 펴고 있다. 그는 이라크전이 세계경제를 악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진작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프리드먼은 독일의 시사잡지 '포쿠스'와의 회견에서 세계경제는 더 나아질 것이며 침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진단했다.

◆장기적으론 충격파='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의 말처럼 지금 당장이 중요할진 모르지만 이라크전 이후 경제학자들의 장기적인 전망은 대부분 우울하다.

뉴욕 타임스는 6일 이라크전에 따른 경기침체와 전쟁비용 증가 등으로 미국의 재정적자가 미국경제에 시한폭탄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재정적자가 커지면 정부는 채권을 발행해 돈을 빌려써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금리가 오르고 투자와 소비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단기적인 낙관론을 폈던 BW마저 세계화가 퇴보하고 기술혁신이 잦아지는 등 전쟁의 장기적인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BW는 전쟁 이후 보복테러의 가능성으로 보안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상품.아이디어.인력의 자유로운 이동이 제약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1990년대 성장을 견인했던 세계화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반전여론이 커지면서 반(反)세계화 그룹들이 힘을 얻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 같은 인적.물적 교류의 축소는 세계경제의 성장과 혁신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BW는 지적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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