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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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파리」 거리에 군밤장수가 나돌기 시작했다. 어느새 가을인 것이다.
「파리」의 군밤장수는 거의 모두 「이탈리아」사람들이다. 이들은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밤은 예부터 「로마」사람들이 애용했다. 종류도 8가지로 나눌 정도로 흔하다. 밤을 영국에 전한 것도 「로마」 사람들이었다.
「마리·앙트와네트」는 백성들이 굶고 있다는 얘기를 듣자 『빵이 없다면 과자라도 먹으면 되잖니』하고 말했다 한다.
그녀는 분명 「마롱·글라세」를 말했을 것이다. 그만큼 밤과자 「마롱·글라세」는 역사가 길고 또 흔했다.
「마롱·글라세」는 밤을 벌꿀 속에 잘 담가 만든 과자다. 그냥 벌꿀에 담근 것은 영국에도 있다. 그걸 영국사람들은 「체스넛·인·시럽」이라고 한다.
「마롱·글라세」를 만들 때에는 밤 모양이 흐트러지면 버린다. 그것이라도 먹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게 백성들의 분노를 산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마롱·글라세」룰 「프랑스」 사람들은 대단한 밤 과자로 여겼었다.
「마롱· 글라세」는 세알 이상은 먹지 않는 게 「에티케트」로 여겨지고 있다. 그 이상 먹으면 뱃속이 거북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맛있고 배도 잘 부르는 밤 과자를 놓고 왜 배고프다 하느냐는 「앙트와네트」의 의문도 알만하다.
밤은 고대 「그리스」 사람들도 많이 먹었다. 「그리스」어의 「밤 열매」는 「라틴」어를 거쳐 「스페인」에서는 모양이 닮았다하여 「카스타네트」가 되었다.
밤은 「유럽」 각지에 퍼져있다. 특히 남구의 산지들에서는 옛날에는 밤이 주식이었다.
마른 모래속에 묻어두면 오래 보존할 수 있기 때문에 「프랑스」의 농가에서도 추, 동의 석식에는 「치즈」와 감자「수프」와 함께 먹는다.
밤은 우리 나라에서도 흔했다. 허균이가 3백년 전에 든 각지의 명산물 중에도 상주의 소율, 밀양과 지리산의 대율이 들어있었다. 예전에는 알맹이가 잘수록 맛있는 밤으로 쳐왔다.
잔 평양 밤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런 탓이다.
벌써 장에는 탐스런 햇밤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추석이 다가온 것이다. 가을이 다가온 것이다.
요새 밤들은 몸집이 옛 밀양밤 보다도 크다. 그러면서도 상주의 잔밤 만큼이나 단맛이 흐른다.
밤이 잘된 해엔 굶는 사람이 없다는 옛말도 있다. 과연 기름이 흐르도록 반지르르 빛나는 밤들의 갈색얼굴을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배부른 느낌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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