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떼가 어린이를 10여분 공격. 허술한 동물원 안전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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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명이 뻔히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서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거대한 몸집의 물소떼가 어린이를 공격하는 10여분 동안 공원 직원 누구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안타까운 비명만이 메아리쳤다. 동물원 측의 허술한 안전관리가 초등학생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다.

식목일인 5일 오후 1시30분쯤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 서울대공원 아프리카 물소 우리 안에서 金모(10.수원S초등3)군이 물소떼의 뿔에 온몸을 들이받혀 어깨.골반이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었다.

경찰은 목격자들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경위를 조사 중이며, 안전관리 미흡 등 동물원 측의 과실이 드러날 경우 담당 직원을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서울시 산하 서울대공원 측은 인파가 많이 몰리는 휴일에도 공무원 근무수칙을 준용, 오히려 근무인원을 절반으로 줄이고 인명사고에 대한 직원 행동 요령도 마련하지 않는 등 안전사고에 대한 대비가 미흡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순간=사고현장에 있었던 관람객들에 따르면 우리 안으로 들어간 金군을 물소 8마리가 구석으로 몬 뒤 그 중 한마리가 날카로운 뿔로 金군을 마구 들이받았다. 뿔에 받힌 金군의 몸이 공중으로 3m 정도 솟구쳤다가 떨어지기도 했다.

金군이 공격을 받는 동안 우리밖 관람객들이 물소떼를 향해 고함을 지르고 신발로 물소를 때리는 등 쫓아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 관람객이 플라스틱 병을 모아 담은 자루를 물소를 향해 던지자 놀라 달아나는 순간 관람객 3~4명이 金군을 구해냈다.

경찰은 "물소 우리는 90㎝ 높이의 울타리가 쳐져 있고 울타리 너머에는 수로가 있어 관람객이 들어갈 수 없다"며 "우리 가장자리의 수로가 없는 울타리를 통해 金군이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몸길이 2~3m에 어깨 높이가 1.5m인 아프리카 물소는 뿔길이가 95㎝에 달하고 성질이 사나워 사자 등 포식동물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는 동물이다.

金군은 사고 직후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며 생명에 지장이 없으나 중태다.

허술한 안전관리=이번 물소사고는 행락객이 집중적으로 몰리는 대형 공원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참사였다. 서울대공원의 경우 봄.가을 성수기에는 하루 평균 3만~4만명의 관람객이 몰리며 식목일과 주말이 겹친 5일에는 올들어 최대인 7만4천3백27명이 찾았다.

이처럼 주말에는 많은 인파가 몰리지만 서울대공원 측은 휴일엔 2교대로 근무, 절반 정도만이 출근하고 있다. 사고 당일도 평소 5명이 지키던 대동물관에는 3명의 사육사만이 출근해 아프리카 코끼리.물소.코뿔소 등 38마리의 동물을 관리했다.

특히 사육사들의 주업무는 사육과 조련인 데다 파견돼 있는 40여명의 공익근무요원들도 주로 산불방지와 주차관리만 하기 때문에 많은 행락객을 직접 상대할 안전관리요원은 전혀 없는 셈이다.

또 대공원에는 이번과 같은 인명사고가 났을 경우 직원들의 행동요령을 담은 근무수칙이 없을 뿐 아니라 공원 내에 설치된 의료소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단 한 명에 불과하고 구급차는 아예 없는 실정이다.

대공원 관계자는 "비수기엔 관람객이 하루 1천~2천명에 불과해 따로 안전요원을 두기에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정재헌.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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