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무르로」석판화인쇄소 50년 비장의 기술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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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석판화가 아직 서울에서는 인기가 없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에는 널리 대중에 보급되고 있다. 싼값으로 원어와 거의 같은 효과를 얻기 때문에 오히려 석판화가 녈리 수집되고 있다.
지금 남불의 「아비뇽」에서 「프랑스」 유일의 「무르로」 석판인쇄소가 50년동안 간직해온 비장의 기술과 경험을 보여주고 있어 미술 애호가들의 호기심을 끌고 있다. 「귀족인쇄소」라는 별명이 붙은 이 인쇄소는 1919년 문을 연 이래 「피카소」·「브라크」 「샤갈」·「마티스」 등 거장들의 그림만을 취급해온 독보적 존재다.
20세기의 대작들은 모두 이곳에서 인쇄돼 나왔다. 「샤갈」의 『「에펠」탑의 연인들』, 「브라크」의 『청조』, 「레제」의 『건설자들』, 「피카소」의 『비둘기』, 「라울·듀피」의 『전기선녀』등 불후의 명작들을 비롯, 「마티스」 「칼더」 「드랭」 「브라지피에」 「비용」 「마송」의 작품들이 바로 이 인쇄소에서 석판화로 퍼져나갔다.
49년 세계평화회의를 계기로 「피카소」의 『비둘기』가 각광을 받게 된 것도 석판으로 찍어낸 광고(벽보) 때문이었다. 「페르낭·무르노」가 개업 후 처음 맞은 고객은 「브라맹크」와 「위트리오」였다. 20년대 「파리」의 국립미술관이 이들 작품의 석판을 주문한 이후 30년대에 「드라크로와」전을 위한 광고를 주문받았다. 특히 「마티스」의 절묘한 점묘법이 재생된 것은 「무르로」의 착색석판인쇄공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그림 값이 오르면 이와 비례해 판화의 수요도 늘어난다. 판화의 수요와는 반비례로 전문인쇄공은 사라져간다. 「무르로」는 「파리」에 7명, 미국과 「이탈리아」에 3명, 「스위스」에 2명밖에 없다.
서독과 영국에는 단 한 명도 없다. 아버지의 유업을 이은 「자크·무르로」는 『석판인쇄의 기계화가 가까왔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석판화가 아니라 단순한 복사품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어제의 개척자였으나 오늘날 사멸해 가는 기술의 최후 보루로 남았다』고 말했다. 「프랑스」정부가 「무르로」인쇄소에 전시의 영광을 준 것은 「프랑스」 미술의 세계전파를 위한 숨은 공적을 찬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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