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 수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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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추곡수매가의 인상률을 되도록 억제하고 수매량도 줄일 방침이라 한다.
이는 양국기금의 적자축소와 물가억제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관측된다.
69년부터 본격화한 고미가정책은 그동안 식량자급을 이룩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식량증산은 재정부담의 증가라는 불청객을 동반했다.
쌀은 우리나라에서 특별한 의의와 비중을 갖는다. 쌀을 증산하기 위해선 높은 가격유인이 필요하지만 ,이를 소비자에게 그대로 전가시킬 수가 없다.
정부가 가격지지와 수급조절에 직접 개입하지 앉으면 안된다.
쌀 증산이 되면 될수록 이런 조절기능에 따른 재정부담은 누증된다.
이미 양곡기금의 한은차입은 7천5백억원이나 되고 이것이 재정적자의 주인을 이루고 있다.
과거 양곡기금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재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우선 눈앞에 닥친 세출을 메우는데 소진했다.
양곡차관의 판매대전은 이미 다 써버렸는데 상환기일은 잇따라 다가오고 양곡기금의 부족도 심화해간다.
과거엔 증산만 하면 되었으나 이젠 증산과 아울러 그에 에 따른 재정부담증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가 더 큰 문제다. 사상최고 최고의 대풍이 되면 될수록 양곡부문의 재정압박은 과중되는 구조다.
아직은 초기단계지만, 조금 있으면 과잉미의 보관처리가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정부가 갖고 있는 쌀 재고만도 이미 1천4백만섬(77년말)에 달했다. 쌀 재고는 계속 늘 수밖에 없을 것인데 이는 곧 재정부담의 증가를 의미한다.
재고증가에 마른 재경부담증가뿐 아니라 이중곡가제에 의한 재정적자는 계속 높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쌀 증산에 「브레이크」를 걸거나 소비자가격을 대폭 올릴 수도 없다. 여기에 바로 양정의 한계와 「딜레머」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금년에 수매가 인상억제와 수매량 축소가 제기된 것 같다.
물가안정을 기하고 재정적자를 줄인다는 관점에선 매우 그럴 듯하게 보인다. 쌀이 물가지수에 차지하는 가중가가 높으므로 쌀값억제가 물가안정에 큰 기여를 할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수매가를 억제하는 등의 정책은 「인플레」의 「쿠션」 역할을 저곡가에 지우겠다는 의도라 볼 수 있다.
사실 공산품과 달라 쌀은 완전 경쟁품목이고, 또 보관문제 등이 있어 수매가 수준이 쌀값과 농가소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노임·농약·비료 등 생산원가는 많이 올랐는데 쌀 수매가는 억제할 경우 농가의 부담은 심각할 것이다.
수매가를 낮춰 물가안정의 계기로 삼을 때 다른 공산품 값 등이 크게 오르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농촌부문이 물가안정을 위한 희생을 혼자 짊어지게 된다.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식량증산을 중단할 수 없고, 또 농촌소득이 오를 만큼 올랐다고 볼 수도 없다. 쌀값은 농촌구매력, 도농간의 소득형평문제와도 관련된다.
따라서 쌀값 문제를 위해선 어느 정도의 재정부담이 당분간 불가피하다고 판단된다. 그 재정부담을 한은차입, 즉 통화증발로 땜질할 것이 아니라 다른 세출을 줄이더라도 비 「인플레」적인 방법을 뒷받침해야 한다.
쌀 문제는 그 여파가 범국민적으로 미친다는 점에서 정책우선순위를 높여 경제적 기준뿐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영향도 아울러 고려하여 처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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