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대중문화는 흐른다 감각적 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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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해방 후 「우리 교육」의 틀 속에서 30여 년이 흘렀읍니다. 선생님이 본래 생각했던 교육의 이상이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그려진 것 같습니까? 『해방을 맞고 새 나라를 세우면서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민주정신을 국민에게 심는 일이었죠. 일제의 경직된 정신적 영향력이 그대로 남아있는 바탕 위에서는 우선 민주교육을 통해 자라는 세대를 민주시민으로 키우는 일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했읍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교육의 기회를 못 가졌던 사람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특수층에 한정되어있던 교육을 대중화하는 일부터 시작했죠.

<교육의 질 강화할 때>
그럼 30년 동안 과연 합리적 사고나 자율적 판단력을 가진 민주시민을 길러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는 반드시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만은 없군요. 』
-여태껏 해결되지 않은 우리 교육의 과제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동안 양만 늘려놓고 질을 강화하는 일은 손을 쓰지 못한 셈이죠. 교육의 질을 강 화해야 합니다. 』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인가요?
『시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책방향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가령 지금 중학 의무교육을 앞당겨 실현하겠다는 논의가 일고 있읍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국민학교에서 한 교사가 80여명씩 맡아서, 그 것도 2부제까지 하는 판에 중학을 의무교육으로 하겠다는 것은 이해가 안돼요. 국민학교만이라도 제대로 교육다운 교육을 하려면 엄청난 투자를 해야합니다.』
-사실 국민학교는 「교육」이전에 어린이들을 「수용」도 제대로 못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읍니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과외로 몰리고 치맛바람이 생기고 하는 것 같기도 한데요.
『그렇습니다. 50년대에 생겨난 치맛바람만 해도 당시 형편없던 학교재정을 사친회라는 학부모 조직이 맡고 나서면서 거세지기 시작했죠. 그뒤 사친회를 없애고 육성회로 바꿨지만 이러한 양상은 단체에서 개인으로, 양성에서 음성으로 바뀌었을 뿐 그대로 지속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같은 교육열을 학교 안으로 흡수하는 길은 없을까요?
『그건 교육열이 아닙니다. 잘못된 풍조입니다. 일종의 허영에서 나온, 그래서 오히려 자녀를 망치는 일이라고 보아야죠. 요새 「옆집아이는 5만 원짜리 선생한테서 과외공부를 한다더라」「그래서 우리집 애는 10만 원짜리 선생을 찾고 있는 중이다」라는 등의 말을 공공연히 하는 사람들을 보는데, 이건 교육을 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겠다는 셈입니다]

<과외 안 시키면 불안>
-요즘은「아무거나 과외」도 있다고 하던데요. 「피아노」도 가르치고 태권도 도장에도 보내고 미술·무용 아무거나 남이 하니까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서 막 해본다는 식이라는군요. 『요새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닙니다. 중동에서 돈이 얼마나 들어오는지 온통 생활을 돈으로만 하려고 해요. 물질적 가치에 매달려 정신적 가치를 내팽개친 사람은 언제나 불안할 뿐입니다. 인간이 돈에 눌러 없어진 것 같은 현상입니다. 미술이 유행이니까 미술공부를 시키겠다는 것은 그 부모는 물론 아이들에게까지 잘못하면 큰 상처를 남겨주는 위험한 일입니다. 소질이나 능력이 없는데도 억지로 했을때 그게 얼마나 가겠어요? 중간에서 실망만 안고 그만 둘 때 그 자녀는 어떻게 되겠읍니까?』
-중·고교를 평준화하면 과외나 「치맛바람」· 일류교 풍조가 없어질 줄 알았는데요.
『평준화라는 것이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간이란 평준화할 수 없는데 인간다운 점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취미나 능력이 어떻게 똑같을 수가 있겠어요. 앞선 사람은 앞선 대로, 뒤진 사람은 또 그대로 각자가 갖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개발해 내주는 것이 교육입니다. 그런데 부작용이 무서워서 근본 목적을 버린 것이 소위 평준화입니다.』
-민주주의 철학의 평등사상과는 어떤 관계가 있읍니까?
『민주사회에서 평등이란 법 앞에서의 평등이지 능력이 평등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 경제는 자본주의 경제 아닙니까? 결국 자본주의 사회는 능력에 따라 경쟁하는 경쟁사회입니다. 경쟁사회의 시민을 기르겠다는 교육에서 능력경쟁을 무시하겠다는 것은 우민을 길러내겠다는 것밖에 안됩니다. 중간 정도에 맞춰 위·아래의 능력소유자를 모두 회생시키겠다는 것은 개인에게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를 부르는 일입니다.』
-대학은 어떻습니까?
『지금 사회 전체가 논리적인 판단보다는 감각적인 만족을 앞세우고 있는 것 같아요. 대학에 학문으로 쌓여진 학풍이 없어요. 재정이 어떻고 「캠퍼스」가, 졸업생 분포가 어떻다는 식의, 구태여 말하면 「학교풍」이 있을 뿐입니다. 법과에 몰렸다, 정외과·경영학과로 몰려다니는 학생들의 과 선택이 모두 옷을 갈아입는 유행처럼 가볍게만 생각하니 야단이군요. 큰「빌딩」하나가 도시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대학도 사회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할 수밖에 없지만 근본적으로 대학은 사회의 잘못된 유행을 바로잡는 일을 해야죠.』
-논리가 흐려지고 감각이 판을 친다는 사회분위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뒤진 나라의 발전은 경제적인 면에 역점이 두어지기 마련입니다. 물질적 가치에 중점이 두어지면 자연 감각적 사고로 치닫고 말죠. 그것이 일방적이면 인간은 완전히 물질 속에 매몰되고 퇴폐풍조가 만연되는 것입니다. 물질적 가치는 결국 정신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논리적 판단력을>
훌륭한 생활을 하기 위해 좋은 집도 있고, 최근의 호화「아파트」도 있는 것인데, 집이나 「아파트」를 손에 넣으면 그것으로 다 된 줄 알고 그 속에서는 온갖 나쁜 것을 해도 좋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읍니까? 서구의 물질문명을 말하지만 그 사람들은 희랍의 과학정신과 함께 기독교라는 정신적 가치를 생활화해왔읍니다. 우리에게 유교는 지나친 예법으로 멀어져 생활윤리로서의 정신적 가치를 확립 못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물질만능의 독소가 퍼지면 우리 사회에는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읍니다.』
-그래서 정신문화연구원도 생기고 했지 않읍니까?
『한 사회의 정신을 어떤 개인이나 기관이 만들어 심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큰 건축물을 지을 때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처럼 정신적 가치를 소중히 다루고 쌓아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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