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중국집 요리사, 소방관, 농부, 기자 … 어린 눈에 비친 20가지 직업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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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괜찮아, 선생님이 기다릴게
김영란 글·그림
사계절, 1만1000원

특수학교 2학년 2반 선생님의 일과는 오전 8시 50분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을 맞이하는 일로 시작된다. 실내화 갈아 신기고, 수업하고, 밥 먹이고, 이 닦이고, 하교시키고, 다음 수업 준비를 하고…. 여느 학교와 다를 바 없는 듯하지만 이곳에선 기다림이, 끈질긴 반복이, 낯선 것에 대한 긴장감이 더하다. 일곱 달 하고 사흘 만에야 화장실 가고 싶다는 표현을 하는 아이를 안아주고, 한 명 한 명에게 칫솔질을 가르치기 위해 아홉 번이나 이를 닦는 선생님의 바람은 이렇다. “우리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행복하게 어울려 살면 좋겠어.” 어디 특수학교만의 이야기일까. 세상 모든 부모들의 바람도 그러할 게다. 다른 이들과 조화롭게 어울려 사는 게 행복이며, 안전한 일상과 믿을 만한 먹거리 등 평범한 삶은 주변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 말이다.

 중국집 요리사를 다룬 『짜장면 더 주세요!』로 2010년 시작된 ‘일과 사람’ 시리즈가 20번째, 특수학교 선생님 이야기로 완간됐다. 마지막 책은 아이들이, 다양한 직업의 어른 뿐 아니라 주변의 조금은 느린 친구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농부·어부부터 선생님·버스기사·소방관·의사·만화가까지 20가지 직업으로 그려낸 우리 사회 만인보다. 중국집 딸, 초등 교사, 만화가 등 저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자기 이야기이자, 석 달부터 삼 년까지 현장을 쫓아다니며 취재해 되살린 ‘직업의 세계’다.

아이들이 장래희망 1위로 연예인이나 공무원을 꼽는 세상이다. 그러나 세상은 저 잘났다는 한 두 명의 주인공만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며, 직업은 안정적 생계를 보장하는 수단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이 손으로 짜장 볶아서 장가도 가고 자식도 넷이나 키웠다”는 중국집 요리사의 자부심, “검은 연기로 컴컴한 화재 현장에 들어가면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구해야 할 사람만을 생각한다”는 우리 마을 소방관의 진심, 그리고 선 굵은 목판화로 담은 농부의 사계절에 녹아 있는 자연과 사람의 관계는 읽는 이에게 주변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아이들은 또한 일에서 비롯되는 부모의 웃음과 눈물을 어렴풋이 이해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여섯 살 배기 아들이 18권 『여기는 취재현장!』을 읽고는 부모가 왜 매일 늦는지, 일요일에도 일하러 나가는지 조금은 알아 주는 것 같아서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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