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공 평화우호조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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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몇 차례의 파란과 진통을 겪어오던 일-중공 평화우호조약이 마침내 조인됐다. 이것은 일본으로선 최초의 자주외교 실천이며, 중공에 있어선「제2세계」와의 최초의 조약상 밀착인 동시에 13년만의 외국과의 조약체결이다.
국제정치상으로 이 조약체결은 미·소 대결과 중·소 대립의 전략구조 안에서 일본이 미국과 중공의 반소전략에 본격 가담한 것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다.
일본의 입장에선 물론 이같은 평판을 수긍하려 하지 않으며, 이 조약체결은 어디까지나 일본자체의 불편부당한 주체적 전방위외교의 일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의 이와 같은 주장은 분명 표면상의 가식만은 아닐 것이다.
그 점은 중공이 요구하는 반소적 「패권조항」에 일본이 한사코 반대의사를 고집해온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실제에 있어서도 이번의 우호조약은 일본의 그런 주장을 십분 반영하여 「반 패권」이 소련 등 특정의 제3국을 적대하자는 것이 아닐뿐더러 일·중공간의 반소 공동행동을 의무화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조약이 중공 8억 인구와 일본의 자본·기술의 역사적 제휴를 현실화하는 것이라는 점만은 사실이며, 바로 그 점에서 보아 이 조약이 중공 대외전략의 큰 정치적 성과임은 부인할 수 없다.
중공의 당면과제는 서기 2천년 대까지 경제와 군사부문의 현대화와 부국 강병화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 목표는 대내적으로는 정권기반을 안정화하자는 것이나 대외적으로는 제1의 적 소련에 대응하자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공은 일본·서구와의 경제적 제휴를 필요로 하며 이에 대한 미국의 암묵적인 양해를 필요로 한다. 중공이 그동안 미국·일본·서구에의 접근을 서둘러온 이유가 바로 그 점에 있다.
중공의 이러한 대외전략은 전세계적 규모로 전개되는 미국의 대소전략을 위해 절호의 유리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본래의 주된 전략적 관심대상은 물론 중공이 아니라 소련이다. 그러나 소련의 팽창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중공의 반소자세와 일본의 대중공 지원을 적당한 거리에서 성원해줄 필요를 느낀다.
그래서 「브레진스키」보좌관은 지난번 북경 방문 때 중공 반 패권주의에의 공감을 선언했고, 동경에 와선 일본·중공 우호조약이 미국의 이익과도 합치된다는 뜻을 암시했다.
이점에서 이번 조약은 일본의 열띤 해명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에서의 미-중공-일본을 연결하는 반소연합전선의 탄생을 시사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크렘린」측이 이 조약의 체결을 전후해서 그처럼 노골적인 반발과 대일 경고를 금하지 않았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소련으로선 일본이 중공의 「반 패권」을 전면적으로 거부하지 않고 부분 거부한 것 자체부터가 일본의 반소진영에의 편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발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평화우호조약」은 일단 조인되었고, 모든 것은 기정 사실화되었다. 남은 것은 이 조약성립으로 「아시아」의 세력균형이 과연 어떻게 달라질 것이냐 하는 점이다. 우리의 희망으론 이 조약이 동북아와 한반도 주변의 미묘한 힘의 균형을 크게 교란하는 일이 있어선 안되겠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앞으로의 일본의 전방위외교와 중공의 대외정책이 어디까지나 「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유지라는 보편적 여망을 거슬려선 안될 것임을 첨언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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