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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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근래에 있었던 몇가지 사회사건들은 단순한 우발적 사고로 간과해 버리거나 과도기적 현상이라 얼버무리기엔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사건의 주인공들은 거개가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고 사건의 내용 역시 회사기강과 인륜도덕의 근본에 저촉되는 일이었다. 부정교사증발급사건이나 성락현추문사건이 그 점에서 모두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극히 일부만의 일시적 실수일 것이고 조금도 과장할 필요없는 과도기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자체만 봐서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었을 지라도 그것이 인간다운 삶의 기본전제인 인륜의 대본을 건드린 것 이었을땐 그냥 무심히 지나쳐버릴 수 없는 것이다. 윤리적 기초나 양식의 공리란 비록 눈엔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지만 그것이 없이는 사회의 기반 자체가 건재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우리는 지금까지『잘 살아보자』는 일념에서 우리의 온갖 정성과 노력을 다 기울여왔다. 그리고 그 피나는 노력에 보람이 있어 고도산업사회의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 눈 코 뜰 사이 없는 전환기적 격변속에서 우리 당대인들 일부의 사고방식은 어느 틈엔가 심한 평형상실증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결핍과 부족으로부터 최대한 빠르게 벗어나서 풍요한 소비생활에 최대한 빠르게 도달하려 발버둥치다보니 일부에서는 어느 결엔가『무슨 짓을 해서라도 한껏 즐기며 살겠다』는 맹목적인 향락 풍조에 젖어들었던 것이 아닐까.
맹목적인 물질적 향락의 추구를 신화화 하다보면 물질적으로 잘 살고 즐겁기 위해선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식의 망념에 빠지기가 쉬운 것이다.
이럴 경우 잘 살아보자던 애초의 고상한 이상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왜냐하면『잘 산다는 것』의 참다운 의미는 물질적인 조건충족과 함께 인간이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하며 정의롭게 사는 것을 뜻하는 것인데,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식의 생각은 이미 정의관념으로부터의 이탈을 뜻하기 때문이다.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관념은 곧 윤리적 금기의식의 마멸을 뜻한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라도 그것이 너무나 비윤리적이고 엄청난 수단 선택을 수반하는 것이면 차마 하지 못하는 심정, 이것이 바로 윤리적 금기의식이요 자제력이란 것이다. 이 두려움과 겁은 인간본연의 양심·이성 또는 문명감각과 더 동일한 것이고 이것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사회의 기축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잇달았던 일련의 사건의 경우 사건의 주인공들은 바로 그 금기의 벽을 너무나 예사롭게 뛰어넘고 있다. 너무나 두려움이 없고 겁이 없는 것이었다.
이런 두려움이 없는 사고방식은 그 당사자를 위해서 불행할 것임은 물론 대부분의 견실한 사람들을 얼마나 낙망시킬 것인가. 우리사회의 대다수 국민들은 거개가 깨끗이 평범하게 살고 있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들이 결국 이 사회의 앞날을 밝게하고 이 사회의 기반을 튼튼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깨끗하고 견실한 부분을 더욱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이러한 어지러운 풍조와 분위기는 윤리적으로 청신하게 가다듬어지지 않으면 안되겠다. 그리고 그 작업은 바로『잘 산다는 것』의 그릇된 해석을 불식하고 그 참된 의미를 다시 한번 원점에 되돌려 재음미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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