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상업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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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908년의 신문학 개화 이후 많은 문인들이 문학 때문에 가산을 탕진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래서「문학=가난」은 우리문단의 공인 화된 등식이었고 그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문학을 차버리는 문인들이 많았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서면서「펜」과 종이만으로 상류에 가까운 생활을 누리는 작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불과 몇 손가락을 꼽을 정도지만 확실히 그것은 우리문단의 경이로운 사건이었다. 그것은 물론 독자들이 그들의 작품을 즐겨 읽고 있다는 증거다. 말하자면 그들의 작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그래서 제법문학이「상품」구실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발생한 것이「문학의 상업화」에 대한 시비이다.
이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문학의 순수성을 내세운다. 달착지근한 연애소설 따위가「붐」을 이루고 작가들이 어떻게 하면 독자, 아니 대중의 취향에 맞는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에만 정신을 팔게될 때 순수한 의미에서 우리나라 문학은 설 땅을 잃어버리게 될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반면 작가들의 입장은 두 가지 문제가 핵심을 이룬다. 하나는 도대체「순수문학」과「상업문학」의 경계를 어떻게 두어야하겠느냐 하는 것이며 둘째는 독자에 영합하려는 작가로서의 직업의식이 왜 나쁘냐 하는 것이다.
양쪽 모두 옳은 주장일 수 있겠는데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는 까닭도 시대의 탓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문단의 최대관심사로 부각되면서 문득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우선 「문학의 상업화」에 대한 구체적인 대상이 누구누구인가 지적된 일이 없는데도 일부 작가들이 스스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인기」와「상업성」이 혼동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다음엔『러브·스토리』의「에릭·시걸」이나『흐트러진 침대』의「프랑솨즈·사강」이 그 같은 대중소설을 썼다고 해서 비판된 일이 있었는가하는 점이다.
모두가 문학에 대한 애정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말하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다시 생각해 봐야할 일이다.<정규웅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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