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주의사회학은 실천과학이다-이문웅 교수의 「환상론」에 대한 반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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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해부터 서서히 일기 시작한 사회과학의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금년에 들어 와서 일종의 논쟁의 성격을 띰으로써 방법론의 토착화를 향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는 듯하다.
계간지 『현상과 인식』에 문화결정론에 입각하여 인문주의 사회학을 공박하는 서울대 인류학교수 이문웅씨의 논문이 소개되면서 근래 와서 드문 학술토론이 전망되기도 한다.
한국사회과학연구소가 최근에 『현대 사회과학방법론』을 펴놓으면서 인간주의 사회과학에 대한 관심을 학계에서 일으킨 바도 있지만 이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서울대사회학교수 김경동씨와 전서울대 사회학교수였던 한완상씨에 의해서 진행되어왔으며 이번에 김 교수의 논문집 『인간주의 사회학』(민음사간)이 출판됨으로써 우리의 사회학분야에 있어서 새로운 촉매역할을 했고 한편 한 교수의『민중과 지식인』(정자사간)은 인간주의 사회학에 있어 이론과 실제가 무엇이라는 것을 역력히 보여 줌으로써 추상적 개념들의 진술이 아닌 구체적인 실천으로서의 학문의 본질을 명확히 드러내주고 있다.
현재 산업사회의 고도의 조직화가 개인들의 자율성과 자발성을 위축함으로써 인간의 물상화가 심화되고 이에 대한 반항이 뒤따르면서 사회학의 영역에서는 인간의 본래적 존재상식을 회복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생겼으며 인간을 해체하는 사회구조를 연구대상으로 삼기 시작했고 이를 위한 방법론이 모색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과정이 인간 중심적인 인간주의사회학의 형성과정이기도 하다.
이문웅 교수가 염려하듯 인간 중심적이라고 할 때 사회학이 천재론이나 위인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그를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하는데 관심을 두고 이 관심을 동기로 해서 지식의 체계를 세워 나가는데 인간주의 사회학의 목적이 있다.
관찰과 측정의 방법을 절대시하는 자연과학은 자연을 지배하고 상품을 생산하는 기술진보에 불가결할지 모르지만, 인간들의 삶이 이루어지는 사회세계를 인식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인간들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세계는 가치의 세계이며 한편 그것은 의미가 복합체이기 때문에 실증주의자들이 바라는 바와 같이 진위로 판가름되는 명제들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어지는 것이다. 사회세계는 인간이라는 주체가 부여한 의미의 세계이기 때문에 인간을 통해서만이 이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을 주체라고 할 때 사적이라는 뜻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여기서는 개인과 개인을 잇는 상호주관성으로서의 주체가 문제되며 주체의 사회성이 전제된다. 만일 사적인 주체성을 논한다면 구태여 「사회학」이라고 붙일 필요가 없다.
김 교수와 한 교수는 그들의 사회학에서 무엇보다도 학문의 윤리적 중립성을 적극 배제한다. 한 교수의 말마따나 지식인과 지식기사를 구분한다면 학문이 가치판단으로부터 자유로 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실증주의자들은 후자에 속하고, 인간주의 사회학자는 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김·한양교수는 한결같이 진정한 삶, 자유로운 삶이 영위될 수 있는 사회의 건설을 목표로 삼는 사회학의 이론형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김 교수가 주장하듯 사회학은 인간의 사회적 실존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사회가 인간성향의 일부분만을 실현하도록 허용하고 나머지는 억제한다는 문화결정론의 입장과는 달리 인간으로 하여금 억압으로부터 벗어 나오게 하려는 지적 시도로서 사회학을 풀이한다.
지성은 교조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인간주의 사회학이 인간의 삶의 모든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다는 과학주의처럼 「이데올로기」화되어서는 물론 안 된다.
사회학은 분명히 비판적 사회이론이 되어야 한다. 사회현상의 기술과 실명, 그리고 예측에만 그치는 관조과학을 현실의 변화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사회적 보수주의라면 인간주의 사회학은 현실을 분석하고 악의 근원을 파헤침으로써 보다 나은 사회를 처방하는 실천과학이다.
물론 김·한양교수가 내세우는 과학의 개념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닐지라도 실증주의의 전횡을 거부하고 인간의 진정한 해방을 위한 과학의 개념을 재정립했다는데 이두 교수의 기여는 지대하며 앞으로 보다 활발한 이론발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차인석(서울대교수·사회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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