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김치수<외대교수·문학평론가>

소설이 삶의 현장이라고 하더라도 그 현장이 소설화되었을 때 그것은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분석이며 해석이다. 이 분석과 해석은 작가가 현실에 대해서 갖고있는 태도의 영향을 압도적으로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작가 자신의 세계에 대한 「비전」이 작품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소설작품을 읽는 비평은 소설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이 제1의 작업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러한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비평가란 작품을 읽는 전문가임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독서행위가 필연적으로 비평적 행위를 동반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작가가 현실과 세계의 독서행위를 작품으로 옮긴 것과 마찬가지로 독자가 작품의 독서를 통해 머릿속으로 작품을 써보고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는 행위는 문학작품의 독서가 골치 아플 때 머리를 식히는 것으로, 자신의 무력감을 주인공을 통해서 해소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소비 행위가 아니라 삶에 대한 반성과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각, 그리고 현실에 대한 질문과 삶의 양식에 대한 회의와 같은 것을 태어나게 하는 창조행위인 것이다.
이와 같은 창조행위에 기초를 둔 독서추세 때문에 소설의 독자가 늘어난다고 한다면 요즘처럼 소설이 많이 팔리는 것을 가지고 상업주의 논쟁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창조적 역할은 이중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하나는 작가에게서 그 기능을 발휘하며 다른 하나는 독자에게서 그 기능을 나타낸다. 이러한 2중적 창조행위가 문학을 통해서 활발하게 진행될 때 문학작품은 많이 나오고 많이 읽히는 것이다.
이달의 작품들 가운데 최창학씨의 『집과 주인』(월간중앙)은 씨의 창작집들에 실린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들과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이 작가의 현실에 대한 절망감이 어떤 화해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가난한 월급장이가 셋방을 전전하다가 겨우 13평짜리 집을 마련했는데, 그것이 흉가라는 소문 때문에 일어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의 연속이다.
씨의 다른 작품에 비교해서 소품에 해당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 작품은 어쩌면 더 강한 의미에서 필연의 지배를 압도적으로 받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서민의 삶이란, 그 우연 때문에 절망적인 것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희망적인 것으로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삶에 대해서, 현실에 대해서 희망과 절망을 갖는 것이 우리 개인의 창조적 노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우연성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꿰뚫고 있는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에 극적인 변전을 통해서 단편의 효과를 잘 살리고 있는 이 작품은 그러나 이 화해적 우연 때문에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그 암울한 세계로부터 벗어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가 스스로 고통스런 현실 인식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주인공의 화해가 작가의 현실과 화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민병삼씨의 『곰보』(한국문학)에서도 드러난다. 복역의 경력을 가진 가난한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짧은 사건을 통해서 서로를 발견하게 되고 그리하여 모두 <어머니>를 찾아간다는 이 소설은 다분히 신화적 모티브가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의 행적을 통해서 이 사회와 감옥과의 관계가 어떻게 빈곤과 연결될 수 있는지 보여주면서 타고난 빈곤이 죄악시되는 풍조가 배경으로 깔릴 수 있었던 것은 이 작가의 능력인 것처럼 보인다.
반면에 박광서씨의 『백부의 죽음』(한국문학)은 죽음을 눈앞에 둔 <백부>의 절망의 여러 가지 양상을 상당히 차분하게 그림으로써 고뇌와 체념의 변주를 읽게 만들고 있고 박순녀씨의 『압록 엘레지』(월간중앙)는 이민을 앞둔 한 기혼자와 남아있을 한 여자의 사랑의 회진이 갖는 허무의 실체를 파악하려 하고 있다.
이 두 작품에서는 모두 달관의 경지가 아쉬운 편인데, 특히 박순녀씨의 최근의 소설에서 보여지고 있는 사랑의 탐구는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사랑과 달관의 경지로서의 사랑으로 심화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