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권과 야당을 같이 문책한 '세월호 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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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大)혼전의 6·4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세월호 참사 이전만 해도 주요 관심사는 지방행정 4년에 대한 평가였다. 하지만 세월호라는 대(大)사건으로 선거는 대(大)심판으로 확대됐다. 출범 1년 3개월만에 유권자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해 엄격한 평가를 내렸다. 선거 전에 탄생한 야당 새정치연합도 대안세력이 될 수 있는 지 평가를 받았다. 정권과 야당 모두 진땀 나는 시험을 치른 것이다.

 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는 보는 각도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현재의 시장·도지사 보유 현황에 비하면 새누리당은 다소 약진했다. 인천·강원·제주 등지에서 선전했고 부산·대구 같은 텃밭을 지키는 데에도 성공했다. 수도권에선 시장·구청장도 늘렸다. 투표 전에 여론조사 등을 바탕으로 제기되던 ‘여당 비관론’을 생각하면 선전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시각도 많다. 2012년 총선과 대선 그리고 1년 넘게 지속된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로 보자면 박 정권은 민심의 호된 시험을 치른 것이다. 사실 세월호 사태 이전 까지만 해도 여권에는 선거 낙관론이 팽배했다. 하지만 결국 세월호와 국정혼란이라는 변수를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새정치연합은 많은 이의 예상에 미달하는 결과를 보였다. 서울에서 큰 표차를 기록하고 충청권을 여전히 지켰지만 약진에는 실패했다. 이제 여야는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각별한 각오로 국정의 혁신에 매진해야 한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힘든 선거를 치른 것은 국가의 중심지역에서 정권에 대한 지지가 도전 받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세월호 사건도 사건이지만 수습에서 드러난 혼란과 불통은 국민의 걱정거리가 됐다. 그렇게 중요한 총리 인선에서도 안대희 파동 같은 게 터지니 많은 유권자는 청와대가 정말로 국정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는지 의심한다. 정권이 동력을 회복하려면 정권 개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국가 개조에 앞서 대통령은 자신부터 바꾸어야 한다. 대통령 집무실 개조를 포함하여 핵심부 내 소통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막힌 곳부터 뚫려야 국정 전반에서 개혁의 물길이 흐를 것이다. 대통령의 변화는 청와대와 내각의 개편에서부터 나와야 한다. 대통령은 수첩과 자신만의 안경을 버리고 광각(廣角)의 시야로 인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고급 로펌 출신 변호사들이 지배하는 민정수석실의 시각으로는 세상 물정의 본질을 꿰기 어렵다. 이는 안대희 사건에서 증명된 것이다. 대통령은 세대와 지역을 폭넓게 포용하는 광폭 개혁인사로 정권에 새 기운을 불어넣어야 한다. 유능하고 덕망 있는 인사라면 과거 정권의 인물이어도 삼고초려를 할 필요가 있다.

 새누리당도 곧 지도부를 개편한다. 과거 지도부는 ‘정권 내 야당’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히려 정권의 각종 인사에서 이권을 관철하려고 ‘낙하산 관행’을 부추겼다. 국회선진화법이 야당에게 권력을 주었다는 것만 내세울 뿐 국회의 돌파에 필요한 국민 지지를 확보하려는 노력엔 게을렀다. 개혁 의식을 갖춘 이들이 새 지도부를 맡아야 한다.

 새정치연합은 새 정치도, 대안능력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김한길·안철수 지도부는 광주 밀실공천 파동 등으로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 새정치연합은 강원 등 일부 지역에서 지지기반을 잠식 당했다. 경기와 부산에서는 통합진보당 후보가 사퇴해 반(反)한나라 전선에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됐음에도 고전했다. 전반적으로 야당은 세월호 참사라는 정권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약진을 기록하지 못했다. 이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유권자의 실망이 야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기대는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야당은 의회권력의 절반을 갖고 있다. 적잖은 유권자가 야당도 일정부분 국정에 책임이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6·4 지방선거에 때 맞추어 국회도 의장단과 상임위원장단을 개편했다. 새 술을 담을 새 부대가 마련된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세월호 사건 이전에는 미방위를 포함해 일부 상임위 활동에서 불필요하게 법안통과를 막곤 했다. 국정발목 잡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다 참사가 터지자 당은 슬그머니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이렇게 무책임한 자세로는 유권자로부터 대안세력이라는 인정을 받기가 힘들다. 새정치연합은 19대 국회 하반기에 맞춰 국회활동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사전투표제가 확대됐음에도 최종 투표율은 기대를 밑돌았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여전한 것이다. 여기에는 여야의 혼란스런 공천도 책임이 크다. 여야는 결과적으로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어겼다. 여야는 대신 상향식 공천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준비가 되지 않아 편법이 난무했다. 특히 여론조사라는 왜곡된 방법을 이용해 마구잡이로 후보를 정한 사례도 많다. 여야는 신속히 당원제도를 정비해 선진국처럼 당원이 후보를 선출하도록 해야 한다. 7·30 보궐선거가 또 하나의 시험이다.

 이제 ‘세월호 선거’는 끝났다. 민심은 이번에도 여·야에게 자기 몫에 해당하는 책임을 추궁했다. 정권과 야당은 각자의 몫에 따라 국가의 선진적인 개조라는 과업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