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1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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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표의 기적.’ 역대 지방선거에서는 거짓말처럼 한 표 차이로 승부가 갈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

 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02년 경기 동두천시 상패동 문옥희·이수하 후보의 표차가 0이었다. 득표수가 같아 나이 많은 문 후보가 당선됐다. 한 표 차로 승자가 나온 곳도 네 곳(인천 부평구·강원 원주시·충북 충주시·경북 의성군)이었다. 기초의원 4명의 당락을 한 표가 갈랐다.

 ‘나의 한 표’가 가지는 힘은 그만큼 크다. 누구나 스윙 보트(swing vote)가 될 수 있다. 스윙 보트는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한, 예측하기 힘든 표심을 의미한다. 동시에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권자를 뜻한다.

 충주시에선 4년에 걸쳐 드라마 같은 한 표 승부가 펼쳐졌다. 2002년과 2006년 승리의 주인공이 모두 한 표 차이로 뒤바뀌었다. 2002년 상대 후보에게 한 표 뒤져 낙선했던 곽호종 시의원 후보가 2006년에는 거꾸로 한 표 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처럼 한 표로 승패가 결정된 경우가 여섯 번, 표차가 0이었던 경우는 세 번이다.

 광역단위에서도 근소한 차이가 당선자를 웃고 울게 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에서 오세훈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한명숙 민주당 후보를 0.59%포인트 차로 누르고 승리했다. 같은 해 제주지사 선거에서는 무소속 우근민 후보가 무소속 현명관 후보를 2259표 차 로 이겼다.

 한 표의 힘은 역사적으로도 입증됐다. 1645년 영국 의회에서는 한 표 차로 농사꾼 출신 올리버 크롬웰에게 국가 통치권이 넘어갔고, 1875년 프랑스 의회는 한 표 차로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제를 확립했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적 충격이다. 투표해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는 무력감과 정치혐오 의식이 팽배할 수 있다. 그러나 충격이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까지 집어삼켜선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김형준 교수는 “자발적·능독적 참여만이 내가 사는 지역을 바꿀 수 있다”며 “정치적 무관심 때문에 투표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소 송경재 교수는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사회가 바뀐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인복 중앙선관위원장은 “선거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 는 내용의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무기력한 유권자와 책임 있는 투표자. 어느 쪽인지 선택해야 할 날이다.

글=유지혜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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