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랑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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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구인들은 그것을 「랑데부」라고 했다. 금성과 토성이 10일 밤9시20분 서울의 밤하늘에서 산책을 즐겼다. 「카메라」의 망원「렌즈」에· 포착된 그 6분 동안의 「랑데부」광경은 두 줄기 빛의 「레일」.
우주의 신비는 끝내 신기하기만 하다. 금성과 토성은 「랑데부」를 했다지만 둘 사이의 거리는 무려 13억3천만㎞. 아무리 광대무변한 자주의 세계라지만 이들은 서로포옹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포옹은 커녕 손이나 잡았을까?
「로마」신화를 보면 금성, 「비너스」(Venus)는 봄·풍요·아름다움의 여신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성애의 여신 「아프로디레」와 같다. 「파리」 「르브르」박물관의 한 가운데에 놓여있는 「비너스」여신상은 백색대리석으로 빚어진 반나의 모습-. 1820년 이태리의 「밀로」섬에서 발견된 이 조각은 여체의 가장 균형이 잡힌 조화의 미를 보여주고 있다.
토성도 역시 「로마」신화에 등장한다. 「사투르누스」(Saturnus)라고 한다. 오늘의 달력에서 토요일을 「세터디」라고 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서 유래했다. 「라틴」어에서 「세로」(Sero)는 씨를 뿌린다는 뜻. 따라서 토성은 「농경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신은 「이탈리아」에 잠시 「사무르니아」라는 도시국가를 세우고 다스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시민들에게 농사짓는 법과 포도재배를 가르쳐 주었다. 한편 좋은 법을 제정해 시민들이 태평을 누릴 수 있게 했다. 그 시절은 이른바 「황금시대」였다.
바로 아름다움과 풍요의 여신인 금성과 농경의 신인 토성이 우리나라의 상공에서 「랑데부」를 즐긴 것은 무슨 길조나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은 「아파트」특혜니 뭐니 해서 온통 침울하기만 한데 우주의 일각에선 서광을 품은 별들이 사랑을 속삭인 것이다.
사람들은 우울하고 때로는 절망적일때 하늘에나 무엇을 기대한다. 별들은 우리에게 아직도 희망은 있다는 촌극을 보여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화 아닌 현실 속의 금성은 지구와 크기가 비슷하다. 직경이 지구의 25분의24, 무게는 5분의4. 태양과의 거리는 1억1천만㎞. 공전주기는 2백25일. 자전주기는 금성주위에 짙은 구름이 휩싸고있어 망원경으로도 보이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구름이 있어도 비나 바람은 없다. 금성의 대기는 온통 이산화탄소뿐인 것이다.
토성은 빛의 테를 갖고 있는 아름다운 별이다. 크기는 직경으로 보아 지구의 9배. 공전주기는 무려 30년. 그 주위엔 10개의 위성을 거느리고 있다.
우리는 이제 다시는 두별의 「랑데부」를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은 76년 뒤에나 있을 일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데이트」를 본 것은 하나의 행운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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