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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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푸에르토리코」는 묘한 나라다. 그곳은 중남미에 대한 미국공책의「쇼윈도」나 다름없다. 따라서 곁으론 공업화도 상당히 진척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푸에르토리코」인은 미국으로 막벌이 하러 가야할 만큼 가난하다.
물론 좋은 대접을 받기는 어렵다. 그래서 반미감정이 대단해질 수밖에 없다. 자의식도 대단하다.
「푸에르토리코」독립운동은 2차 대전직후부터 일어났다.52년에야 겨우 자치권을 얻고, 67년의 국민투표로 미국자치령이 되기는 했다. 그러면서도 미국대통령에 대한 투표권은 없다.
이래서「푸에르토리코」에서 영어를 쓰면 대답도 잘 하지 않는다. 한다해도「스페인」어로 대꾸한다.
「푸에르토리코」사람들의 권투 열에는 이런 강렬한 민족주의 감점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중남미에 공통된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프로·복싱」의 세계「챔피언」 들이 중남미에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충분한 까닭이 있다구나 할까.
WBA와 WBC를 합친다면 세계「챔피언」은 모두 24명. 그중에서 중남미사람이 l6명이나 차지하고 있다.
「파나마」에는 5명이나 있고「푸에르토리코」와「멕시코」에도 각각3명씩이나 된다.WBA에서 WBC가 갈라져 나온 까닭도 중남미의 반미감정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WBC는 본부가 미국이 아니라「멕시코」에 있다.
중남미에서는 이렇게 민족적인 감정을 권투에 담는다. 그것 말고서는 민족적 울분을 발산할 길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기야「복싱」경기란 남미사나이들이 아니라 해도 묘하게 민족적인 감정을 자극시킨다.
그것은「복싱」이 가장 원시적이고도 본능적인「스포츠」인 탓이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면 민족적인 감정이란 가장 본원적인 것이기도 하다.
확실히 권투에서는 이기는 쪽이나 지는 쪽이나 민족을 업고 싸운다.
양쪽 국가가 연주되고 국기가 게양되는 만큼 한결 민족적인 감정이 경기장 안팎의 열도를 더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민족의 선진성과는 관계가 없다. 언젠가 유제두 선수에게 설욕한 다음에「와지마·고오이찌」(윤도)는「일본 혼」을 들먹이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래서 이기면 민족의 영웅이 되지만, 지고 나면 하루아침에 다시없는 죄인이 되고 만다.
어제「푸에르토리코」에서 오영호 선수가 비참하게「링」위에 쓰러졌다. 아마 그에게는「세라노」의「잽」보다도 더 아픈 눈총을 한참동안 받아야 할 것이다. 그래도 어쩔수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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