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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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나치게 긴 겨울방학(55일)과 지나치게 짧은 여름방학(25일)-.누구의 눈에도 기이하게 보이는 이 불균형을 조정, 각기 4O일씩의 원상으로 환원시키기로 한 서울시교위 측의 결정이 문교부에 의해 거부당했다는 소식은 놀라운 일이다.
문제는 얼핏 아주 사소한 일 같지만 따지고 보면 결코 그렇지가 않다. 그것은 수백만 학동들의 건강과 학습능률향상에 직결된 문제일 뿐 더러 어느 의미에선 이 나라 교육제도운영의 근간에도 관계되는 중대문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나라의 기후조건으로 보아, 근 2개월 간의 겨울방학과 한 달도 채 못되는 짧은 여름방학이란「언밸런스」는 행정상의 필요 때문에 수백만 학생·교사들의 건강이나 학습능률문제를 너무도 등한시한 비교육적 처사임을 부인키 어렵다.
생각해 보라. 짧은 여름방학 때문에 이 나라의 모든 초·중등학교 학생·교사들이 폭염을 무릅쓰고 7월말까지 비능률적인 수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교육적인 처사인가는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
연일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와 불쾌지수 80이상의 기후조건이라면, 완전한 냉방과 환기시설을 갖춘 초현대식「빌딩」안에서 근무하는 어른들마저도 고통을 호소하는 게 보통이다. 그렇거늘, 하물며 어찌 학급당 1백 명도 넘는 초 과밀학급에다 학생·교사들을 몰아 넣고, 선풍기 하나 변변히 마련해주지 않은 채 7월말까지 수업을 계속하라고 강요할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각도를 달리하여, 방학이란 구실 외에서 행해지는 또 하나의 학습활동이란 점에서도 도착된 겨울·여름방학기간의 재조정은 절대적인 교육적 요청이라 할 수 있다. 겨울철이 자칫 집안에 갇혀 독서하고 사색하기 좋은 기간인데 비해, 여름철은 그 반대로 멀리 바다로, 산으로 나가 심신을 단련하고 넓게 명승고적 지를 찾아 역사와 자연을 배울 수 있는 계절일 것이다. 그렇다면 긴 겨울방학보다는 상대적으로 긴 여름방학이 소망스럽다는데 대해서도 누가 이론을 달 것인가.
우리는 물론, 현재와 같은 절름발이 방학이 생기게 된 애당초의 동기를 모르지 않는다.73년의「오일·쇼크」이후 취해진 정부의「에너지」절약시책이 바로 그것인데, 그러나 이제 사정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는가. 현재에 있어서도 연료절약의 필요성이 소멸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우리가 이룩한 눈부신 경제성장이나 국민소득의 배가, 그리고 외환보유고의 급진적인 증대 등 여러 객관적 요인들은 연료문제에 있어서도 그만큼의 수요대가를 큰 무리 없이 지탱할 만큼 된 것이 우리사회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로의 겨울방학기간 연장제안이라면 이에 따른 추가연료비 소요액 2억 원(서울의 경우 4일분)정도를 어찌 과하다고 할 것인가.
게다가 방학기간의 조정과 같은 간단한 학사행정에 대해서까지 문교부가 제1차 감독관청인 시·도 교육위의 결정에 간섭을 일삼는다는 것은 이 나라 교육제도 운영의 대원칙이라 할 교육의 자치정신과 그 자율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처사로 오해받을 만 한 일이다.
끝으로 이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강조돼야 할 것은 국가시책의 우선순위가운데서 교육이 차지할 비중이 과연 어디에 있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국가민족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오늘의 산업역군을 기르는 긴 요도에 비추어서도 교육의 중대성이 자주 거론되는 한편에서 단순한 연료시책상의 필요 때문에 방학기간의 비교육적 책정조차 시정하지 못한다면 교육 입국의 명분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초현대적「아파트」군이 난립하는 가운데 의무교육을 실시할 국민학교마저 설립이 부진하고, 그나마 학급당1백 명이라는 세계 제1의 초 과밀학급을 그대로 좌견 하고 있다면 우리의 국가시책의 우선순위 문제는 좀 우스운 우화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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