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어린 연주… 거침없는 지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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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7, 8일 이틀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중앙일보·동양방송 주최)열렸던「뉴욕·필」의 연주는 역시 세계적인 명문교향악단다운 훌륭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첫날「베토벤」의『영웅』이 시작되면서 우기가 겹쳐서 그런지, 세종문화회관이 신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건물자체가 덜 건조되어 그런지 교향악단의 소리가 제대로 잘 울려주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역시「리하르트·슈트라우스」의 음악에 이르러서는 워낙 장대한 음량이라. 그러한 조건도 의식치 못하게 할만큼 충만한 음향을 들려주었다.
「베토벤」의『영웅』은 과장 없는 퍽 지적인 해석이었다. 그와 같은 느낌은 특히 제1악장에서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멘델스존」의「바이얼린」협주곡을 협연한 김영욱은 확실히 뛰어난 음악가다. 기법에 대해서는 두말 할 필요가 없는 경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날의「멘델스존」은 평자의 생각보다는 좀 심각하게 음악을 해석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제1악장에서 고뇌에 찬「멘델스존」을 보여주었는데 그러나 그 나름대로 일관된 흐름을 3악장까지 이루어 나간 것을 보면 그는 이제 완전한 음악가라는 이름을 들어 마땅할 것 같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경쾌하고 가볍게 처리하는「멘델스존」의 연주를 그를 통해 듣고싶은 마음이다.
『틸·오일렌슈피겔』에서 보여준 놀라운 음량은 그 넓은 세종문화회관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했다.
언제 우리교향악단의 소리도 저렇게 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특히 금관 목관이 화합되어 울리는 소리는 가히 절경이었다.
둘쨋날 들려준「바그너」의『「탄호이저」서곡』은 한국인의 기질로는 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끈질기게 끌고 나가는 곡인데 이를 지휘자「라인스도르프」는 유연한「리듬」감으로 끝까지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지휘자의 역량에 대해서는 새삼 두말 할 필요가 없겠지만 곡의 커다란 흐름을 거침없이 인식하여 낮은 차원의「리듬」(박자)에서 벗어나 보다 큰 차원의「리듬」(시간의 주기성)을 몸짓으로 익살을 섞어가며 보여줌으로써 음악을 듣는 이에게 저절로 형식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연주회를 들은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르겠지만 평자에게는 2일간의 연주 중「슈베르트」의『미완성 교향곡』이 가장 좋았던 연주로 느껴졌다. 특히 그 제1악장은 잊을 수 없는 깊은 감명을 주는 연주였다.
『신세계 교향곡』은 마치 자신들이 살고있는 자연을 표현한 것에 긍지를 느끼듯, 정성스럽게 연주해주었다. 정성스런 연주였지만 이 곡보다 미완성교향곡이 더 좋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드보르작」과「슈베르트」에 기인하는 것이리라.
많은 돈을 주고 불러온 교향악단이라 자주 듣고싶다는 말은 못하겠고, 다만 우리의 교향악단도 어서 빨리 수준을 높여 이처럼 좋은 음악을 들러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실해진 좋은 연주였다.
서우석 <서울대교수·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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