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회사들, 경영난 심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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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출판계는 지금 20여년 전 도산 업체가 속출하던 때 이상의 불황이 닥쳐온다고 지레 겁을
먹고 있다. 제작비가 지난 연말에 비해 6월말 현재 2배 이상 올랐다. 거기다 지난해 3월「검
인정 교과서 파동」과 지난 4월 「2종 교과서 탈락」의 이중고를 안은 대 출판사들이 흔들리고 있다.
해방과 더불어 민족 문화 재건의 기치를 들고 활약한 출판사들, 이른바 「노포」들이 올
들어 거의 신간을 못 낸 채 사실상 출판 활동을 중단하고 있다. 건국의 등록 출판사 1천8백18사중 출협 조사로는 최근 8년 동안 1종 이상 책을 낸 「산 출판사」가 1천2백여 사. 이 가운데 매월 1종 이상의 책을 내고 있는 출판사를 1백여 사로 볼 때 이들 20여 노포가 흔들린다는 사실은 그들이 주로 양서 출판만을 해왔다는 점에서 출판계로서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우선 50년 역사를 가진 정음사 (대표 최영해)나 해방과 함께 태어난 을유문화사 (대표 정진숙)가 일찌기 없었던 시련기를 맞고 있다. 정음사는 55년에 을유문화사와 거의 같은 때에
「세계 문학 전집」을 기획 출판 50권을 냈고 을유는 1백권을 채워 한국 번역 문학 사상 획기적 공헌을 했다. 해방 전에 생긴 삼중당과 함께 이 세 출판사는 출판 도서 종류만도 각 1천여종이 넘는다.
민중서관이 출판 외적인 사업의 실패로 사실상 문을 닫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
만 정음사·을유문화사 등은 출판에만 30여년 정진해왔음에도 지금 새로운 책 1종도 내기 힘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들이 만든 「세계 문학 전집」은 번역 문학에 공헌한 업적과는 반대로 영업 면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 경제적 보상은 전집을 그대로 베껴 싸게 파는 신흥 출판사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난해 「검인정 교과서 파동」은 이들 노포를 비롯한 1백14개 출판사에 94억원의
벌과금을 부과했는데 큰 출판사는 3억∼10억원씩을 내년 3월까지 갚아야한 다.
여기다 지난 4월 인문고 2종 교과서에 다시 탈락한 40여사는 5백만원 내지 1억원의 제작
비를 또 날려버려 더 궁지에 빠졌다. 교과서 출판에 참여하면서 그런대로 양서를 출판해 왔던 대출판사들이 흔들리고 새 책을 못내는 이 같은 사정은 상당히 오래가리라고 출판계는 보고 있다.
『적어도 2∼3년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정도이며 교과서만 출판해오던 일한
도서·백영사·장왕사·대동문화사 등은 벌써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학술 서적을 주로 출판했던 일조각 (대표 한만년)이나 어문학과 학술 도서를 발행하면서 최근에는 한국학 진흥을 위해 「한국학보」라는 이간지까지 출판하던 일지사 (대표 김성재)등은 더 이상 학·예술의 양서 출판을 못하겠다고 주저앉고 있다.
악서가 양서를 몰아내는 이 판국을 구제할 길은 없을까. 출판사가 책을 못 낸다는 것은 결국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해서 기획 출판하는 책이 안나온다는 얘기. 유행을 쫓는 단행본류만 성공한다면 그 점은 한국 문화의 원천적인 밑거름이 되지 못한다.
30년 대공황기에 미국에서 「하퍼·로」 출판사가 파산했을 때 「뉴욕」의 「모건」 은행
행장이 『출판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 문화의 받침대이기 때문에 파산했을
때 「뉴욕」의 「모건」 은행 행장이 『출판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 문화의 받침대이기 때문에 파산해선 안 된다』고 은행 융자로 되살려낸 이야기나 75년 「오일·쇼크」 때 도산하는 일본의 삼성당을 산업 갱생법으로 되살려낸 지혜를 출판계는 부러워하고 있다.

<국가 도서 개발 위원회 설립 건의>출협
대한 출판 문화 협회 (회장 한만년)는 도서 산업 육성을 위한 「국가 도서 개발 위원회」설치를 30일 문공부에 건의했다. 양서 출판사의 경영 부실로 출판 문화가 빈사 상태에 있다고 분석한 출협은 79년에 시작되는 문예진전 2차 5개년 계획에서 대대적인 출판 문학 지원 사업을 벌여줄 것을 요청했다.
이밖에 문예 진흥 사업으로 추진해줄 것을 요구한 출판 사업은 다음과 같다.
▲전 출판계를 망라한 도서 도매 기구 설립을 위해 50억원의 장기 저리 융자.
▲신문 연구소와 같은 형태의 「출판 과학 연구소」 설립.
▲한국학 도서의 해외 진출 지원.
▲학술 도서·기술 도서의 출판비 지원. 「독서 추진 운동 협의회」조직·도서 관망 확충.
▲양서 출판 지원을 위한 「출판 진흥법」 제정.
▲문예 진흥원의 작가에 대한 출판비 지원을 출판사의 인세 지원으로 바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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