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서 유통 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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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 도서 유통 협의회와 전국 서적상 연합회는 지난 21일 새로운 도서 유통 기구 발족을 위한 단합 대회를 열고 출판계의 숙망이던 공동 판매와 공동 구매 기구의 설립을 다짐했다.
현재 도서 유통 협의회의 취지에 찬성하여 이에 가입한 출판사는 전국 1천8백여 회사 중 1백27개 사라고 하며, 이에 호응하고 있는 서자 연합회 회원 수는 전국 3천5백개 서적상중 2천3백여개소라고 전한다. 또 「유통협」에 가입해 있는 회원 출판사들의 면모를 훑어보면 기왕에 잘 알려진 대 출판사들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고 대부분이 신참·영세 출판사들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을 보면 이번 공판 추진 운동은 출판계 내 군소 신참 세력의 자구적 경영 전략과, 「서적상련」측이 노리는 독점 판매 전략이 서로 이해 관계를 같이함으로써 나타난 하나의 공동 전선이라 볼 수 있겠다.
영세·신참 출판사 측으로서는 이를 통해 기존 유통 과정을 통해서는 감당 불능한 과잉「코스트」를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판로의 신속, 편리한 광역화, 다변화를 기할 수 있게 되고, 수금 과정의 위험 부담과 애로점을 제도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잇점을 얻게 된다.
한편, 「서적상련」측의 입장에서 보면 이 공판 제도가 동 기구의 발언권과 비중을 한층 더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으며, 이 기구에 가입하여 그 의무 사항에 동조함으로써만 허여 받게 되는 판매상의 각종 배타적 이익 조건을 더욱더 공고히 해준다는 점에서도 결코 싫어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그 동안 우리 출판계에는 여러 가지 고질적 병폐가 누적되어 왔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유통 과정상의 각종 부조리와 무질서로 말미암아 영세 출판업자와 도서 구입자들은 여러 가지 불이익을 감수해야했던 것이 사실이다.
독자적인 전국 판매망을 가지고 있지 못한 신참 군소 출판업자들은 아무리 야심적이고 수준 높은 책을 간행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광범위한 독자층에 적절히 공급할 「채널」을 갖지 못해 고심했었다.
독자의 입장에서도 어떤 좋은 신간물이 나왔다는 소문은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가까운 서점에서 손쉽게 구입할 길이 없어 안타까워하는 일이 비일비재였다.
이 결과 일부 조급해진 출판업자들은 정도를 벗어난 과잉 판매 경쟁에 몰두한 나머지 「덤핑」 출판, 불유쾌한 월부 판매, 제책의 열악화, 책가의 불공정한 책정 등 여러 가지 부조리가 자행되는 사례가 늘어갔다.
이러한 풍토 아래 건실한 출판 사업이나 양식 있는 출판 문화가 성장할린 만무하며 수준 높은 출판물의 풍성한 공급이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까닭에 누가, 언제, 어떤 형식으로 시작하든지간에, 도서 유통 과정의 합리화·근대화·단순화를 기하도록 해야겠다는 여망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던 것이다.
이번에 발족한 「유통협」의 움직임은 일단 그와 같은 문제 의식의 한 소산이었을 것으로 선의의 해석을 해보고자 한다. 만약 그것이 생각한 그대로 잘만 성사된다면 출판사→유통 기구→지방 도매 기구→일반 서점이라는 일관된 공판 「시스팀」이 점차 확립될 소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의욕적인 구상과 명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이 「시스팀」이 일부 도서의 재 주문이나 반품 처리 과정에서 의외의 시행착오와 혼선에 부닥칠 가능성도 결코 과소 평가 할 수는 없다.
서적이나 잡지의 판매 방식을 굳이 전통적 판매 장소인 책방에만 국한해서 팔아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또 하나의 문제라면 문제다.
오늘의 동태적인 도시민 생활에서 학생과 시민이 책을 사를 수 있는 곳은 지하철 판매대일 수도 있고 학교 앞 문방구점일 수도 있어야만 할 것이기에 말이다. 보다 광범위한 독자가 보다 양질의 도서를 보다 편리하게 구입해 볼 수 있는 과학적 유통 기구의 발전을 위해 정책 부서의 진지한 배려와 지원이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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