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 올린 건축 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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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 당국이 대형 「아파트」와 주택의 신축을 규제키로 한 것은 건축 자재의 수급 차질을 완화하기 위해 취해진 고육지책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아파트」나 주택의 신축을 직접 규제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사태가 심각해진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조치에는 『건축 자재의 수급 사정이 완화되기까지』란 단서가 붙었으나 이런 직접규제는 당초의 의도와는 달리 엉뚱한 부작용을 빚게 마련이다.
발표가 있은지 불과 며칠 사이에 벌써 대형 주택과 「아파트」 값이 몇십%씩 뛰기 시작했고, 사려는 사람은 있어도 팔려는 사람이 없다지 않은가. 따라서 이 규제 조처가 장기적으로 계속될 때 어떤 폐해를 가져오게 될 것인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최근의 건축 자재 수급 차질은 그간 정부가 취해온 일련의 경제 시책의 당연한 귀결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정부 당국은 작년부터 건축 경기의 진작을 직접·간접으로 부채질했고, 이것이 「인플레·무드」에 의해 더욱 가속됐다.
건축 자재의 공급 능력이 뻔한데, 정부가 앞장선 『의욕적인 사업 계획』을 앞다투어 들고 나왔었다. 또 주택 경기의 진작을 도모한다면서 「시멘트」 생산 시설의 증설 등을 계속 억제했다.
민간 투자가 활발하면 재정 수요를 줄여 공공부문에서 경기 조절 기능을 도모하는 것이 정석인데도 불구하고 공공부문에서 한술 더 떴다.
공전의 주택 「붐」과 중동 건설, 중화학에다 농촌 주택 개량 등이 한꺼번에 겹쳤으니 건축 자재 파동이 안 일어났다면 도리어 비정상이다.
건축 자재의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선 근원적으로 물량 공급을 늘리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지만, 건축 자재는 쉽게 물량 공급이 늘기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우선 「시멘트」·철강 등은 장치 산업이므로 시설을 증설한다 하더라도 그 가동에는 최소한 2년은 걸리고 모래·자갈·인력 등은 원천적인 제약이 있다.
때문에 장기적으로 공급 능력을 늘리면서 너무 첨예한 수요의 상승을 완화하는 정책적 유도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조처도 단기적인 수급 완화에는 약간의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게될 주택 건축을 정책적으로 막았다는 것은 결국 수요를 잠시 이월시킨 단기 요법에 불과한 것이다. 게다가 가뜩이나 절대량이 부족하여 값이 치솟고 있는 주택 신축을 억제한다는 것은 집 값 상승을 더욱 가속시킬 우려가 있다. 다시 말해 주택보다는 차라리 다른 사업을 다소 늦추는 것이 경제적 효과 면에서 부작용이 덜할 것이다.
건축 자재의 부족이 심각하여 주택의 신축마저 중단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라면, 그것보다 긴요도가 덜하고 폐해도 적은 사업들을 고를 수 있을 것이다.
또 단독 주택 40명과 「아파트」 45평 이상이라는 제한 규정은 균형상으로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파트」 전용 면적 45평이면, 보통 50평이 넘는 호화 「아파트」인데 이것과 단독 주택 40평을 같은 기준으로 본다는 것은 아무래도 합리성을 찾기 힘들다.
비록 이번 조처가 단기 요법이기는 하나 규제의 형평마저 잃었다면 더욱 설득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더욱 중요한 것은 민간에 대한 규제 이전에 정부부터 먼저 모범을 보이라는 것이다.
그것 없이는 정부의 물가나 주택 정책에 대한 공감과 신뢰성을 얻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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