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내분 봉합 실패 … 금감원에 칼자루 넘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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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전산 시스템 교체와 관련해 내부 갈등을 겪고 있는 국민은행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금융감독원의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30일 긴급 이사회를 열었지만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전산 시스템 교체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1일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열린 국민은행 이사회에선 전산 시스템 입찰 과정에 문제를 제기한 정병기 감사의 감사보고서가 논의는 됐지만 정식 이사회 안건으로는 채택되지 못했다. 또 4월 이사회에서 새 시스템으로 결정된 유닉스 이외에 한국IBM의 메인프레임을 입찰 대상에 추가하자는 것도 이사회 안건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금감원은 현재 진행 중인 검사를 5일까지 마무리하고 7월 중순 전에는 관련자와 경영진에 대한 제재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내부 통제와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점, 리베이트 의혹과 같은 모든 내용을 전반적으로 살피고 있다. 조사 대상엔 전산 시스템 관련 당사자와 KB금융지주 및 국민은행 경영진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현재 KB금융 경영진과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은 “장비 규모가 작고 개방성이 뛰어난 유닉스로의 교체는 대세”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건호 국민은행장과 정 감사는 “유닉스 기종 선정을 하는 과정에서 이사회에 올라간 서류에 문제가 있다. 은행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국IBM의 제안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감원 검사 결과에 따라 어느 한편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부 갈등이 계속되면서 국민은행은 한국IBM과 체결한 전산 시스템 유지보수 계약이 만료되는 내년 7월까지 새 시스템을 도입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은행 전산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는 13개월 정도가 필요해 늦어도 6월 말까지는 기종과 사업자가 결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국민은행 관계자는 “내년 7월까지 새 시스템을 도입하지 못하면 한국IBM과 단기 유지보수 계약을 해야 한다. 이때는 지금의 세 배 수준인 3개월에 270억원을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선 “이번 내분으로 한국IBM만 이득을 보게 생겼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현재 IBM 메인프레임을 전산 시스템으로 쓰고 있는 국민은행은 지난해 11월 주요 임원들로 구성된 경영협의회에서 장비 규모가 작은 유닉스로 전산 시스템을 교체하기로 했다. 이어 올해 4월 이사회를 열어 이를 의결했다. 예상비용은 2000억원이었다. 하지만 애초 유닉스보다 높은 가격을 불렀던 한국IBM의 대표가 4월 중순 뒤늦게 이 행장에게 e메일로 1500억원대의 가격을 새로 제시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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