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스 사단 앞지른 브레진스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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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카터 미 대통령이 지스카르 불 대통령의 제안을 재빨리 받아들여 자이레 사태에 개입한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그 이유는 이제 미국 외교정책 집행과정에서 브레진스키 보좌관이 국무성을 누르고 승리자로 확실히 부상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지스카르는 지난달 26일 백악관 만찬에서 카터에게 미국이 아프리카에 군수 지원을 하도록 권고한 바 있는데 카터는 그 자리에서 이를 즉각 수락했다. 이 결정은 지난 16개월 동안아프리카 사태에 비 개입정책을 써오던 국무성의 방침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이와 동시에 카터 행정부는 SALT협상에 대한 조급한 정책을 포기함으로써 SALT문제는 최소한 11월 선거까지는 동결될 것이 확실해졌다.
아마도 브레진스키는 카터에게 『소련의 팽창 무드에 미국이 단호히 도전해야한다』는 사실을 설득시킨 것 같다.
이러한 결과는 상대적으로 밴스 국무장관을「부차적 역할」을 하는 인물도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카터의 태도는 원래 모호한 데가 있기 때문에 브레진스키의 승리가 일시적일 수도 있다.
한 국무성관리는 『카터가 한편으로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또 한편으론 평화와 군축을 촉구하고 있다. 그가 어디서 결말을 낼지는 모를 일』이라고 하면서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냈다.
카터는 지난2일 「워싱턴·포스트」지가 『미국이 전략무기제한회담(SALT)을 동결시키려 한다』는 보도를 하자 화를 벌컥 냈다. 그는 상오 7시에 파월 백악관 대변인에게 전화를 걸고 이 보도의 부정확성을 직접 해명하겠다고 노발대발했다.
브레진스키는 소련을 화나게 한 중공방문에서 돌아온 직후 밴스와 여행결과를 상의하기도전에 NBC TV의 『언론과의 면담』프로에 나가 할 말을 다해버렸다.
밴스 보좌관들은 이러한 브레진스키의 태도를 가리켜 『밴스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하고있다.
그러나 밴스 자신이 정말 모욕을 느꼈다고 생각한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밴스는 이론가나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잘 훈련된 법률가이기 때문에 아마도 카터의 직접감독을 받아가며 문제해결의 역할에만 충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일 카터가 SALT를 내팽개치고 아프리카에서 강력한 반소정책을 쓰기를 원한다면 밴스는 또 그대로 따라갈 것이다.
백악관 관리들에 의하면 밴스는 그의 견해를 강력히 표시하기보다는 오히려 브레진스키 에 대항하려는 국무성내 주장을 진압시키는데 더 큰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과거 브레진스키 자신의 전략이었다.
브레진스키는 그 동안 카터 행정부에서 소련에 너무 무력하다는 경고를 수 차례나 받아 오면서도 계속 침묵을 지켰다. 브레진스키는 내심으로는 밴스와 브라운 국방장관이 대소 정책을 변경하기를 희망했었으나 이를 대외적으로 표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브레진스키는 소련의 위험성에대한 신념을 얻고 나서부터는 드디어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브레진스키는 소련에 대해 계속 압력을 가할 작정이다.
이러한 상황은 이상주의자가 아닌 밴스나 말없는 브라운에게 『콜럼비아 대학교수였던 브레진스키가 어째서,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미국외교 정책에 책임을 지고 나섰는가』를 설명해 주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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