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연구자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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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73년 국립박물관의 26년 「터줏대감」 윤무병 부관장 (선사 고고학)이 충남대로 자리를 옮기고 서울대의 최몽룡씨 (고고학)가 전남대 교수로 부임해 서울을 떠나던 시기를 가리켜 지방 대학의 한 전기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까지 물론 지방에서 고고학 분야에 열심히 몰두하고 있는 학자들이 적지 않았지만 워낙 훈련된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분야인 만큼 문화재 연구는 상당한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선사 고고 학계의 중진학자인 윤 교수는 충남대로 옮기면서 『지방 대학만이 해낼 있는 조사연구에 평생을 바치겠다』고 밝혔다. 그는 충남대에서 백제 문화 연구 소장직을 맡아 그때부터 충남 지역, 특히 해안 지방의 미 조사 지역 발굴에 착수, 현재 「백제 문화권」연구의 앞길에서 학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방 대학의 「전기」>
최 교수는 광주로 옮긴지 6년 사이 전남의 유적을 『거의 완전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학계의 감탄을 받고 있다.
『호남 문화가 아직도 황무지로 남아 있다는데서 사명감을 느끼고 있읍니다.』-서울의 집을 팔아 광주에서 전셋방에 살고 있는 최 교수는 이제 서남해안 선사시대 유적 조사의 제1인자로서 『지방 문화에 묻히겠다』고 말한다.

<민속 찾기 등 큰 성과>
「지방 문화」를 발굴, 조사하여 계승시킨다는 것은 대학의 당연한 과제. 특히 문화재 분야에서 지방 연구 기관이 없는 현실에선 지방 대학에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분야에 훈련된 전문가들이 모두 서울에 몰려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지방문화가 「미개척지대」로 그냥 남아있었다.
윤 교수나 최 교수의 경우는 바로 이러한 서울 중심의 연구를 지방 대학으로 옮겨놓는데 일역을 함으로써 하나의 「전기」를 만들었다.
지금 지방 대학은 지방 문화 발굴의 「붐」을 맞고 있다. 각 종합 대학은 의무적으로 박물관을 가져야 하는데 이들 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발굴·조사 활동이 「지방 문화 재개발」이라는 지방 대학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다.
교수나 학생이『 지방 대학만이 할 수 있다』는 사명감 속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이런 지역적 연구들은 언제나 학계의 주목거리로 자극과 도움을 주고 있다. 경북대 윤용진 교수(고고학)처럼 논문을 발표할 때마다 「새로운 연구」로 문제가 되고 「경북 일대의 정확한 자료」로 평가받는 것은 바로 지방에 있으면서 연구한 결과일 것이다.
민속 연구의 지춘상 교수 (46·전남대 박물관장)도 마찬가지. 56년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한 이 고장 토박이 지 교수는『전남 일대 안 가본 곳이 없다』고 자신할 만큼 지역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전남에 파묻힌 민속을 되살려 「고싸움놀이」나, 「강강수월래」를 한국의 대표적 민속으로 발굴해 냈다.
뿐만 아니라 농학 분야에서 우장춘 박사 같은 연구를 기대하고 있고, 세계적인 과제가 되고있는 공해 문제에도 지방 대학의 지역적 연구에 기대고 있는 실정. 국내에서 처음으로 지난 68년 부산 동아대엔 「위생공학과」가 설치되고 「공해 문제 연구소」가 세워졌을 때도 지방 대학의 사회 봉사로 평가됐다.

<뿌리 내려질 것인가>
부산 해안 지역의 수질 오염 문제 등 수산대 「해양 환경학과」와 더불어 학문적 업적 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 연구로서 큰 몫을 하고 있다.
『지역적 연구가 곧 세계적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겠어요? 문제는 대학이 어느 만큼 연구자들에게 대학으로서의 연구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가에 있지요.』 동아대 공해 문제 연구 소장 김수생 교수 (환경 공학)는 지금 지방 대학이 학문적 연구의 기틀을 내려야 할 「개척기」라고 말했다.
서울로만 가려고 하던 학생들이 지방으로 쏠리고 그들 인재를 찾는 사회의 요구가 크면 클수록 「연구하는 대학」의 자세가 바로 밑거름이 된다. 지금 꽉 찰대로 찬 서울의 대학들, 그리고 보수적 분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젊은 연구자들이 지방 대학으로 쏠리고 있다. 작년 한햇동안 해외에서 돌아온 학자들의 50%이상이 지방 대학으로 정착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 연구자들이 과연 뿌리를 내려 튼튼한 학문의 역을 쌓을 것인가가 지방 대학의 과제다.
학생이 전공을 따라 원하는 교수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학교 「간판」을 보고 대학을 선택하는 한국적 「학벌주의」, 더우기 대학마다 두껍게 둘러친 장벽은 자칫 이런 연구자들의 귀중한 연구를 외롭게 하고 대를 끊게 만들 위험을 갖고 있다. 지금 여러 면에서 열세를 겪고 있는 지방 대학이기에 더욱 그것은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윤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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