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람형을 애도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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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청람형, 기어코 가시고 말았소이다 그려. 하긴 여든셋이나 살았으니 그 누가 부를 하지 않았다 하리오마는….
더구나 형은 병마로 여러번 위경을 치르면서 지금까지 생존해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83세 이상을 더 산 느낌이요.
친구들이 하나씩 둘씩 가는 것을 볼 때 나도 지금 살아있는 것인지 의심이 갈 때가 더러 있구료.
더구나 청람형과 나는 동경에다 연사간이기 때문에 소년시대부터 자별히 지내온 친구.
그래서 늘 자주 만나 토론도 하고, 우스운 얘기도 나눴잖소. 근년에는 정양 중에 있으면서도 생일에는 친한 몇몇 친구들을 청해 같이 식사를 하며 지난날을 얘기하기도 했소.
그러나 이제 현생에선 자리를 같이할 수 없게 됐으니 서운하고 슬픈 일이요.
옥천의 아름다운 산천 타기를 타고난 형은 어려서부터 청명한 재질의 소유자로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고 일생을 강직하고 청렴 결백하게 살다 간 사람이요.
20세 전후인가, 진천군속으로 일하면서 일본인 서무과장이 한국인을 업수이 여기고 업무를 독결 한다하여 그를 두들겨준 일로 우리는 형이 얼마나 불의를 참지 못하는 인간인지를 알 수 있었소.
해방 후 동쪽의 분단을 막아보자고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5·10선거를 끝까지 반대하고 한민당의 입당 교섭을 받자 민족 분열의 책임을 질 수 없다며 끝내 거부한 것도 불의한 일을 보고 참지 못하는 형의 대쪽같은 성격을 보여준 좋은 예라 할 것이요.
그후로도 형의 이런 자세는 오늘까지 단 한번 흐트러진 일없이 정치를 해도 들고나고, 받아들이고 물리침이 항상 명분과 대의를 따라 일관됐음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니 내가 새삼 매거할 필요가 없으리다.
청람형은 또 우리 나라 역사를 꿰뚫어 흐르는 전통적 정신을 잘 이어 받은 분이었소.
평화를 사랑하고, 불의와 부정을 배격하고, 교육과 문화를 존중하며, 충효를 중시하는 우리의 전통적 정신을 형처럼 말없이 꾸준히 실천하다 간 사람이 어디 또 있을지….
거기에다 형은 오랜 법조 생활을 통해 일찍부터 민주주의의 가치를 체득했고 이를 함양키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은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바이외다.
청람형을 말하면서 어찌 청렴 개결한 성품을 논외할 수 있으리요.
변호사 생활도 오래하고 정치도 했으니 얼마간의 재산은 마련할 수도 있었을 텐데 형은 죽는 이날까지 북아현동 조그만 집에 누워 차편조차 마련 안돼 바깥출입 한번 마음대로 해오지 못한 채 길이 잠들고 말았으니 그 청빈 생활은 살아남은 우리의 심금을 더욱 아프게 하는구료.
그러나 이제 청람형은 가고 없으니 미안하고 아쉬워한들 무슨 소용있으리요.
우리네야 오래 산다는 것보다 하던 일이나 끝내고 죽자는게 욕심이라면 욕심이오만 청람형은 아호대로 맑은 물처럼, 맑은 산처럼, 맑은 바람처럼 살다가 늘 입버릇같이 말하던 대로 앙천부지무괴어심의 생이 되었으니 무슨 한이 있으리요.
실로 형의 강직 청렴한 성품과 자세는 형의 꿋꿋한 힘의 원천이었으려니와 후생들의 좋은 본보기였소.
청람형! 부디 평안히 가시오. 극락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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