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가는 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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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얼마 전에 서울에서 살고 있는 친구에게서 편지가 왔다.
20여 년을 서로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며 살던 다정한 친구가 외국으로 이민을 떠나니 곧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부모 형제가 외국에 살고 있어서 몇년 전부터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미루어 오던 그녀가 남편의 사업이 실패하자 떠나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너무나 진한 서운함과 아쉬움이 눈물로 번져왔다.
며칠 후에 우리는 온양에서 같이 하룻밤을 지새며 40을 바라보는 나이도 잊은 채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며 웃고 울었다. 못 다한 말을 남기고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허전하고 우울했던지….
나는 6·25 때 어설픈 소녀 시절을 보냈던 부산 피난 시절을 가끔 생각한다. 바닷가에 거미줄처럼 다닥다닥 늘어섰던 판자 집도 지금은 없어지고 그 소란스럽던 사람들도 모두 떠나버렸을 그 곳을 그래도 언젠가는 한번 가보고 싶다는 자그마한 꿈을 가지고 있다.
하물며 몇 십년을 살아 온 내 조국을 그들은 얼마나 그리며 살 것인가. 이별처럼 서러운 것은 없다면서 전송은 생략해 달라던 친구의 말을 생각한다.
낯선 나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도 떠나는 이들이 원하는 풍요로운 삶이 이룩되기를 빌어 본다. 조근형 <경북 상주군 상주읍 성동동 156의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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