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새 태평양「독트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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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확고한「아시아」정책이 없다시피 했던 미「카터」행정부의 새 태평양「독트린」이「먼데일」부통령에 의해 발표되었다.
미국이 태평양 세력으로 잔류하겠다는「독트린」의 기조는「포드」전대통령의 태평양「독트린」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개인방식이라든지, 미국과 여타 태평양국가와의 관계 양상이라든지 하는 면을 통해 상당한 변화방향을 암시하고 있다.
우선 개입방식의 중점이 정치·군사적인 안보위주에서 안보와 사회개혁의 균형으로 바꾸어진 점이다. 이러한 사회문제·인간문제에 대한 관심의 표명은「카터」대통령의 이른바「도덕외교」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동안 국내외의 적지 않은 반발로 좌절도 겪고 퇴색되기도 했으나 아직도 역시「도덕」이라는 것은「카터」외교와 떼어놓을 수 없는 명분처럼 되어있다.「라틴아메리카」와「아시아」의 우방들에 대해서는 그 명분의 적용강도가 한결 강하기까지 하다.
전후의 미국외교에 대해선 전부터도 우방에 위력적이고 적대진영국가에 대해 은근하다는 비평이 없지 않았다. 그와 마찬가지로「카터」행정부가 도덕외교를 수행함에 있어서도 이중기준을 취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전통적으로 미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나라에 대해선 국내인권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는 반면, 공산국가 혹은 중립국가에 대해서는 더 큰 인권유린마저 애써 못본체 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미국이「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사회개혁을 강조하게 된데는 이러한「도덕외교」적 요소와 함께 이 지역으로부터 미국의 점진적 퇴진이란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
사회개혁을 강조하기 위해 군사 안보적인 개입의 중요성을 퇴색시켰다기보다는 오히려 군사 안보적인 개입의 축소에서 오는 공백을 사회·경제의 강조로 메우게된 면이 두드러 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강력한 태평양세력으로 잔류하겠다는 새「독트린」의 기조도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겠다.
「먼데일」부통령은 동남아와 대양주의 5개국을 순방하는 가운데 겨우 호주에 와서야 소련해군의 인도양으로의 팽창을 용허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을 뿐,「아시아」제국에서는 군사 안보적인 발언을 지극히 삼갔다.
또「카터」행정부는 그동안 줄곧 일본을 비롯한 비공산「아시아」-태평양제국과 미국내의 주한미군 철수반대 주장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견지해왔다.
태평양세력으로 잔류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주한미지상군 철수계획을 바꾸지 않는다고 하면 그러한 선언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미국의 결의나 의도는 말보다는 행동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철군계획의 강행은 백개의「독트린」보다도 미국이「아시아」에서의 군사적 역할을 소극화하려 한다는 말 이전의 증거가 된다.
실제 행동과 부합되지 않는 선언은「카터」행정부의「아시아」정책에 대한 이 지역국가들의 의구도, 공산주의자들의 오산가능성도 해소하기 어렵다.
결국 새 태평양「독트린」이 선언됐다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다.
우리로선 철군을 전제로 한 자주안보태세 확립만이 변함없는 당면과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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