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 <21화> 암환자의 '마지막 선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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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주말. 뜬금 없이 아버지는 선글라스 타령을 했다. 선글라스를 꼭 갖고 싶다고 했다. 기분이나 내자면서 동네 안경점에 갔다. 물론 아내는 얼른 사드리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아버지는 순순히 시력측정대에 앉았다.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랐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게임을 좋아해 눈이 나빠졌다. 아버지는 내가 안경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눈은 나빠졌고, 결국 나 역시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안경을 맞췄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은데, 그때는 안경을 쓰면 공부를 더 잘할 것 같았다. 착각도 가지가지하던 동심의 시절이었다.

나중에 나도 아빠가 되면 아이에게는 "이 아버지는 책을 많이 읽어서 눈이 나빠졌다"는 허풍을 떨 것 같기는 하다. 실제로 나는 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독서보다는 문제집 푸는 것을 좋아했다. 독서를 즐기게 된 것은 집이 어려워진 뒤다. 회사에는 자료실이 잘 구비돼 있었고, 아무리 많이 해도 돈이 들지 않는 취미는 독서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독서량이 넓거나 깊이가 있지는 않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아버지가 쓰고 있는 안경이 오래되어 현재의 시력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것. 안경사는 "선글라스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안경부터 바꾸셔야겠습니다"라고 했다. 지금 쓰고 있는 안경으로는 글씨가 잘 안 보일 것이라고 했다. 종이에 적어대는 안경사의 숫자만 살짝 봐도 꽤 차이가 있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뗑깡'을 피우고 있다. "돈이 드니 선글라스는 싼 것으로 사고, 안경 렌즈 교체만 서비스로 해주지 않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그냥 저기 쇼파에나 앉아계시라는 윽박을 지르고는, 얼른 계산을 했다. 선글라스를 새로 맞추고, 안경은 렌즈만 바꿨다.

아버지에게 대뜸 물어봤다.

"아니, 눈이 이렇게 안 보이면서 왜 안경 바꾸자는 소리를 안합니까?"

예상되는 답은 "돈 들까봐" "아니, 그냥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같은 것이겠지만, 아버지의 답은 의외였다.

"정신이 없어서, 눈이 안 보이는 줄 몰랐어."

속이 상했다. 할 말이 없었다. 얼른 카드를 긁었다. 나는 내 눈에 두드러기가 나거나, 안경에 작은 흠만 가더라도 불편하다고 난리를 쳤다. 힘들었던 시절, 티셔츠는 1년 동안 4장의 반팔티로 버티면서도 안경만큼은 꼭 편하게 썼다. 휴대전화와 더불어, 굳이 돈을 아끼지 않았던 품목이다. 일하는데 직결된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픔으로 정신이 없어서, 눈이 잘 안 보이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3년을 살았다니. 속상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10여분을 더 기다렸다.

렌즈를 교체한 안경을 받았다. "이렇게 시원하게 보이는 것을"이라고 말하셨다. 선글라스는 다음 주에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새 안경을 쓰고, 아버지는 '마지막 선물'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선글라스는 6일 뒤에 와서 찾아가야 한다. 직접 오시겠다고 한다. "내 이거 써보고 죽어야지"라는 말과 함께. '오래'라는 단어가 빠진 것 같아 아쉽다.

아버지의 선물 타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역시 또 뜬금 없는 물건이다. 바로 '사회과 부도'였다. 아버지는 내게 지난 주부터 사회과 부도를 하나 구해달라고 했다. 대개 중고생 시절, 지리 수업을 하면 워크북처럼 펼쳐 세계 주요 국가들과 국내 국토를 찾아볼 수 있는 지도와 설명이 가득한 책이다.

왜냐고 물었다. 낮에 시사프로그램에 각종 위치나 지명이 나오면 찾아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오후 시간에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이 많이 방영된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종편 채널들이 오후 시사프로그램으로 재미를 본 이후, 지상파와 보도전문채널까지도 확산된 트렌드다. 아버지는 그 방송들을 보면서 지명이 나오면, 어딘지 찾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지방선거 격전지 뉴스 리포트가 나오면, 그 지명을 찾아 위치를 살펴보고 관련 통계를 보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젊은 세대라면 스마트폰의 검색 기능을 사용, 스마트폰의 정보를 보면서 TV를 방영했겠지만, 아버지에게는 그 정도까지는 벅차다. 이 때문에 옛날의 추억 물건 격인 사회과 부도를 떠올리셨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사회과 부도를 며칠 보다가 책꽂이에 꽂아뒀다. 생각보다 내용이 많지 않고, 지도도 몇 번 보면 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 며칠은 사회과 부도를 보면서 이곳 저곳을 찾아보는 재미를 느꼈다고 한다.

사실 8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는 누구에게 선물을 변변히 받아본 기억이 드물다고 했다. 주로 누구에게 뭘 줬던 기억이 많다고 했다. 직업도 서비스업이니 누가 명절 선물이라고 사다주는 것도 별반 없었다. 가끔씩 학원 학부형들이 간식 보내주면 학생들과 나눠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아버지가 선물 타령을 가끔 하는 것은 지나간 세월에 대한 소심한 반발 내지는 보상심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별 것 아니지만, 약간의 수고로움이 드는 선물을 받고 싶은 것이 아닐까. 돈이 많이 드는 선물은 받기도 미안할테니, 아들 네가 조금 수고를 해서 아버지 선물에 신경을 쓰라는 그런 마음 말이다. 어쨌든 그날 아버지는 새 렌즈를 낀 안경을 쓰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 잘 보인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다음날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니, 글쎄 그 아픈 몸을 끌고 같이 마트에 가자고 하지 뭐야. 10만원이 생겼대. 그래서 그걸로 내 옷을 사야겠대. 안 그러면 내가 옷 한 벌 못해 입을 것이라고 말야. 그래서 티셔츠 3장 샀어. 자기가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나. 어휴."

아버지는 당분간 '마지막 선물'을 여러 차례 이야기할 것 같다. 주로 평소에 갖고 싶었는데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 물건들 다 아버지와의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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