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당신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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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사랑하는 나의 아내 현주에게.

참 오랜만에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 연애 시절엔 그래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편지를 쓰곤 했는데 결혼하고 살 비비며 살다 보니 내가 무심해진 건가. 뜸해진 것이 어찌 편지뿐일까. 곰곰 생각해 보니 7년을 넘게 함께 살면서 사랑한다는 말은커녕 고맙다는 말을 한 기억도 이제는 가물가물한 것 같아.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핑계 같지만 내가 당신을 하루도 잊은 적 없고 늘 사랑한다는 거 알고 있지. 우리가 함께한 13년 세월은 특히 감동적이었던 것 같아. 생각해 보면 우리에겐 그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어. 남들은 ‘연애하다 때가 되면 하게 되겠지’ 하는 결혼도 우리에겐 너무나 힘든 과정이었으니까. 장인 어르신의 반대에 부닥쳐 시도 때도 없이 눈물 흘리던 당신을 보며 늘 미안했었어. 나도 남몰래 많이 울었어.

 내가 조금이라도 더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면, 조금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면 그렇게 반대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우린 그때 이미 잡은 손을 놓을 수가 없을 만큼 서로를 끔찍이 사랑하고 있었지. 비록 가진 건 없어도 이 세상에서 당신을 가장 많이 사랑해 줄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거든. 그때부터 나는 당신을 오래도록 지켜주겠다고 다짐했지.

 언제였더라. 봄이었나 가을이었나.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던 날이었는데 그날 당신이 몹시 아팠어. 만성 심장병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아파하는 건 처음 봤어. 고열과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당신 모습을 보면서 난생 처음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때 깨달았어. 내가 이 사람을 정말 많이 사랑하는구나.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당신을 사랑했던 것보다 나를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이 훨씬 크고 깊었던 것 같아. 아픈 와중에도 우리 둘을 꼭 닮은 아이를 낳고 싶다며 병원을 찾아다니는 당신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어. 혹여 ‘당신이 건강을 잃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거든.

 그렇게 힘든 노력 끝에 아들 윤후를 낳고 키우는 당신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 이게 진정한 사랑이고 가족이구나’ 하는 진한 감동도 느꼈어. 나는 당신 하나만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윤후까지 안겨준 나의 아내 윤현주. 늦었지만 고맙고 감사하다.

 오늘 당신에게 약속 하나 할게. 다른 건 몰라도 당신과 윤후는 내가 반드시 지켜줄게. 항상 윤후 손 꼭 잡고 내 등 뒤에 서 있어. 당신에게 닥쳐오는 모든 세상의 바람과 파도, 그리고 비는 내가 다 막아줄게. 당신은 건강하게 윤후와 내 곁에만 있어 줘. 우리 가족은 당신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니까.

  2014년 5월 따스한 봄 어느 날 남편 문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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