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교양] '대공황의 세계적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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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세계적 충격/디트마르 로터문트 지음/양동휴.박복영.김영완 옮김/예지, 1만3천원

이 책에 대한 관심은 1930년대 대공황이 경제사학자들의 말처럼 '최초의 세계사적 사건'이어서만은 아니다.

당시 대공황이 지구촌에 미친 전대미문의 충격 때문에 그렇게 평가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2003년 오늘의 상황이 30년대 대공황과 흡사하다는 경고(미 프린스턴대 해롤드 제임스 교수)때문이다.

이라크 전쟁 뒤 세계는 동반 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일본 게이오대 사카키바라 교수)도 나오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대공황에 대한 초기의 연구성과를 반영하는 교과서적 정보에서 많이 벗어난다. 1929년 미국 주식시장의 붕괴가 대공황을 촉발했다고 보고, 이에 따라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공황을 서술하는 기왕의 작업과 이 책의 시각은 많이 다르다.

그것을 저자는 '글로벌 역사'라고 이름붙이고 있다. 고도로 복합적인 세계체제 속에서 나타나는 인류 상호작용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서술하는 작업이 그것이다.

따라서 미국 주식시장 붕괴 이전인 1차 세계대전의 경제적 유산, 1920년대의 구조적 위기 측면을 상당부분 반영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한국.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와 중남미 등 저개발국과 식민지 국가들이 감내해야 했던 대공황의 고통을 다각도로 보여준다.

이를테면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의 경우 일본에서 시작된 쌀 가격의 하락, 과도한 토지세의 징수 등의 영향으로 인한 디플레이션과 통화가치 하락으로 그 어떤 나라보다 혹심한 빈곤의 계절을 겪어야 했음을 규명하고 있다.

1920년대에 비해 1930년대 이후 쌀 생산량은 크게 증가했으나, 쌀 소비량은 외려 감소하고 화전민이 증가하는 등의 통계자료도 인용되고 있다.

중남미의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 출현 역시 대공황과 밀접하다. 토착 과두세력과 민중, 그리고 해외 채권자들 사이의 이해관계 충돌은 포퓰리즘의 출현을 재촉했다는 것이 저자의 시선이다.

한국 관련 기록은 본래 이 책의 원서에서는 없었던 대목. 그러나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번역서가 나오는 차제에 한국 관련 서술을 집어넣었다고 밝히고 있다.

'대공황의 세계적 충격'은 그리 두껍지 않은 데 비해 서술의 밀도는 높은 편이다. 따라서 전문서에 가까우며, 상당한 예비지식이 있을 경우 더욱 효과적으로 읽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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