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탁구단의 평양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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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은 내년 4월 북괴에서 개최되는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에 미국 선수단을 파견키로 결정했다고 일본의 한 신문이 보도했다. 또 이에 관해서는 국무성 측에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단 파견 결정의 명분으로는 『「스포츠」 교류가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이란 점이 게시되었고, 『정치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설명도 아울러 첨가되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북괴의 미국 탁구 「팀」 초청이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와 타산에 의한 것임은 그들이 국제적인 「스포츠」행사에 유독 한국「팀」과 「이스라엘」「팀」만은 초청 대상에서 제외한 것만 보아도 역력하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전 적대국간의 「스포츠」교류가 여행 제한 해제에서 탁구단 파견을 거쳐 정치적 접촉에까지 이르렀던 미·중공 교섭 과정의 초기적 증상과도 흡사하다는 점에서도 사태는 결코 심상한 것이라고 하긴 어렵다.
우리는 물론 그 누구보다도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추구해 왔으며, 남북한과 미·소·중공·일본 사이의 정당하고도 정상적인 관계 설정을 추구해 왔고 또 추구하려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으로 평화에 기여하는 『정당하고 정상적인 긴장완화』가 되려면 완벽한 상호성과 형편상·보편성이 충족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가령 북괴는 미·일과 더불어 접촉을 할 길이 트이는데 한국은 소·중공과 접촉할 길이 트이지 않는다던가, 또는 북괴가 남북 평화와 교류는 외면하면서 미·일과는 교류하려 한다던가 하는 따위는 한국의 안전과 한반도의 균형유지 상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한미 동맹국 사이엔 대 북괴 자세에 있어 완전한 보조 일치와 사전 토의가 이루어져야 할 전략적 필요와 도덕적 당위가 있는 것이며 조금이라도 미국의 독주 때문에 북괴에 일방적 이익을 허용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원칙에 비추어 이번 미국의 탁구선수단 평양 결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심히 유감스런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북괴가 의식적으로 한국을 초청하지 않은 구기대회에 미국이 참가를 결정한 점에서도 그렇거니와 또 소련이 「서울」사격대회를 「보이코트」했는데도 미국은 평양 탁구대회를 선뜻 받아들였다는 데서도 그렇다. 그나마 그 초청·수락 과정에 대해 우리측에선 아무런 사전 정보도 입수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이를 어찌 범상한 일이라 하겠는가.
주한 미군의 철수 계획 자체부터가 한국과의 사전 토의를 거친 결정도 아니었고 북괴와 중. 소외 상호주의적 반대급부를 조건부로 한 것이 아니었다. 최근의 이른바 「3자 회담론」이란 것 역시 남북 대화 중심외 4자 회담 안에 비해선 훨씬 후퇴한 양보적 발상이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소극적 발상「패턴」의 연장선상에서 이번엔 다시 북괴에 대한 「핑퐁」 외교마저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균형 잃은 일방 통행과 독주가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서는 물론, 미국 자체의 이익수호를 위해서도 결코 유익한 것이 되지 못 할 것임은 너무도 뻔하다고 『한국에 불리하고 북괴에 유리한 행위』가 어찌 미국엔들 불리하지 않기를 바랄 것인가. 미 당국자의 냉철한 상황 판단을 촉구하면서 한국 참가가 동반되지 않는 한 탁구 선수단 평양파견은 마땅히 재고 돼야 할 것으로 믿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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