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33개 품목의 수입 자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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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랜 진통 끝에 상공부는 15일 수입 자유화 계획을 발표했다. 1백33개 품목 수입 자유화 계획은 수입 금지 품목을 없애고 원자재의 수입을 개방했다는 점에서 명목적으론 상당히 대담하고 실질적인 것 같이 보인다.
수입 자유화의 당위와 국내 산업 보호라는 현실적 요구와의 틈바구니에서 상공부가 이 정도나마 과감한 수입 개방을 결심한 데 대해선 높이 평가할 만 하다.
수입 자유화가 왜 필요하냐 하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줄 안다. 장기적인 정책방향으로서 뿐만 아니라 외환 누증 속의 물가 강세라는 현실적인 요청도 강하다.
그런데 이번 수입 자유화 계획은 그런 당위적인 요청보다 당면한 산업 보호면이 더 강조된 것 같다.
급격한 수입 자유화가 국내 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은 명백하기 때문에 그만큼 저항도 강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물가 안정과 장기적인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어느 정도의 고통은 각오해야 할 것이다.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서 계속 비싼 물가와 이로 인한 국제수지 부담을 키워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번 수입 자유화의 실질적인 개방 폭이 어느 정도냐 하는 것은 수입 증대 효과를 2억「달러」 정도로 보는데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2억「달러」면 금년 상품 수입 추정액 1백32억「달러」의 l.5%에 불과하다. 1.5% 정도의 수입 증대로 물량 공급을 확대하고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유발할 수 있을지는 큰 의문이라 해야 할 것이다.
개방 품목에 있어서도 농수산물과 의약품·화장품·섬유 원료 등은 제외되었다.
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농산물과 국제 가격 보다 월등히 높은 의약품·화장품 등이 이번 수입 개방에서 제외된 것은 이들 품목이 특별법에 의해 실질적으로 수입 금지되고 있으므로 특별법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이유가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가격이 월등히 높은 이들 품목을 그대로 둔다면 수입 개방의 의의는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상공부도 특별법의 수입 규제 조항을 무역 거래법에 단일화시키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를 서둘러 특별법에 묶여 있는 품목도 수입 개방을 같이 단행해야 할 것이다.
섬유 원료 등의 수입 개방이 가장 늦자 계획되어 있는 것도 이유야 어떻든 납득하기 힘들다.
50개의 수입 금지 품목이 모두 제한 혹은 자동 승인 품목으로 풀린 것은 대외적인 효과를 노린 것 외에는 별 뜻이 없을 것이다.
50개의 품목이 금지에서 제한 혹은 자동으로 완화되더라도 실질적인 수입 억제가 계속 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할 수 있다.
이 정도의 수입 자유화나마 이것이 실질적인 물가 안정과 국제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기 위해선 관세율 조정에 어떤 결단이 필요하다.
벌써부터 국내 산업에의 타격을 이유로 수입 개방 품목에 대한 관세율 인상 요구가 나오고 있는데 만약 관세율을 높인다면 수입 자유화의 실효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것은 결국 무역 계획상으론 수입을 개방하고, 관세 장벽으로 수입을 막아 수입 자유화가 구색에 그치고 마는 결과가 될 우려가 있다.
관세율 조정에 있어선 이번 수입 자유화가 물가 안정과 국제 경쟁력강화를 위해 단행된 것이라는 점이 존중되어야겠다.
국내 산업이 당장은 어느 정도 타격을 받으리라는 것은 각오해야 하고 또 그런 타격을 극복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한국 경제의 체질 강화는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수입 개방에 따른 수입 격증의 우려는 직접 규제나 관세 장벽보다 통화 억제와 안정에 대한 신뢰감의 확대라는 근본적인 방법을 통해 해소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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