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때 퇴학당한 독립유공자에 52년만에 명예졸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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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남편대신 졸업상 받은 부인도 감격의 눈물.
일제에 항거했다하여 졸업을 15일 앞두고 퇴학당하고 끝내는 옥살이를 치르던중 숨진 독립유공자에게 52년만에 졸업장이 수여됐다. 20일 하오 동래고교 운동장에서는 독립유공자 고 박영출써에 대한 명예졸업장 수여식을 갖고 고인의 높은 뜻을 기렸다.
박씨는 1926년 동래고등보통학교 5학년 재학중 (공립 3회) 「마쓰다」(송전) 선생배척 동맹휴학의 총책임을 지고 퇴학을 당했던것.
이사건은 음력 섣달그믐날밤 당시 학교기숙사에 있던 이모라는 학생이 고향생각이 나서 당직사감인 「마쓰다」 선생에게 『오늘밤은 쓸쓸하니 빵이나 좀 사주세요』라고 말한 것이 화근이 되어 일어난것. 「마쓰다」 선생이 이말에 벌컥 성을 내며 『조선민족은 모두 거지근성이 있다』며 민족을 들먹인 것이 한국 학생들의 울분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이말을 전해들은 기숙사 선생인 정인섭씨는 분개하여 「마쓰다」선생에게 『너도 교육자냐』면서 몽동이를 휘들렀고 끝내는 전교생에게 번져 「마쓰다」선생 배척 동맹휴학에 들어가게 됐다.
학교가 혼란에 빠지자 당시 일본인교장 「쓰루다」씨는 주동학생을 퇴학시키기로 하고 주모자 색출에 나섰는데 이때 학생의장이던 고 박씨는 자신의 희생으로 많은 학생들의 피해를 막을수 있다며 『내가 주동자』 라고 자청, 학교를 퇴학당하고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졸업을 겨우 15일 앞둔 때였다.
박씨는 그후 일본으로 건더가 「야마구찌」(산구)고등보통학교릍 거쳐 경도제대를 졸업, 곧장 한국으로 건너와 한민족을 말살하려는 일제 항거운동에 나섰다.
박씨는 우리민족의 각성을 촉구하는 운동과 일본정부의 학정을 비난하면서 일본의 획일주의 교육을 지양하고 민족주의·자유주의 교육을 해야한다고 각신문에 호소했다.
이에 당황한 일본정부는 박씨를 붙잡아 혹독한 고문끝에 징역 4년형을 내렸으며 박씨는 대전형무소에 복역중 31세이던 1938년 끝내 옥중에서 숨을 거둔 것이다.
박씨는 경남동래군기장면의 부호아들로 태어나 동래고보 재학때는 축구선수로도 이름을 떨쳤으며 지하조직체인 기장학우회회장으로 독립운동을 하는등 지방의 청년 지도자로 활약했었다.
정부에서는 이같은 고인의 활동을 기려 77년 12윌 1일 독립유공자 건국보장을 수여했다.
이번에 늦게나마 졸업장을 받게 된 것은 서정봉씨(72)등 생존한 고인의 동창생 12명이 학교측에 호소해 결실을 본 것으로 고인의 생일날을 택해 졸업장을 수여하게 된것.
남편대신 졸업장을 받은 김소애 할머니(70)는 비록 생전에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남편도 지하에서 무척 기뻐합할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부산=김상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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