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가스관 연결 4년 걸려 … 지금부터라도 한국 뛰어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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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은 단순히 에너지원이 아니다. 에너지 지정학(geopolitics of energy)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국제 에너지 전문가인 백근욱(55·사진) 박사는 “한국도 중국과 러시아의 천연가스 거래에 뛰어들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백 박사는 현재 영국 옥스퍼드에너지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자 영국 차탐하우스(전 왕립국제문제연구소) 객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년간 에너지 정책과 국제 관계를 연구한 이 분야 글로벌 권위자다. 그는 중국석유총공사(CNPC)와 러시아 사하공화국의 자문관을 맡아와 중·러 내부 사정과 국제 에너지 외교에도 밝다. 그와의 인터뷰는 중국과 러시아가 가스협약을 체결한 지난 21일 국제전화를 통해 이뤄졌다. 그는 이날 “뉴욕타임스(NYT)·파이낸셜타임스(FT)·신화통신 등 세계 10여 개 매체와의 인터뷰 요청에 종일 시달렸다”면서도 “한국 언론에서 연락 온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제 에너지 외교의 중요성에 대한 한국 내부의 관심도와 인식 수준을 반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말을 덧붙였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중·러 가스협상 타결의 의미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고립됐던 러시아에 아시아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또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아시아 LNG 시장을 러시아가 방관만 하고 있지 않겠다는 경고의 의미도 있다. 아시아 공략의 중심 축이 중국이 됐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짭짤한 실리를 챙겼다.“

-한국 바로 옆 국가들끼리 거대 에너지 공동체가 됐다.
“한국이 조금만 서둘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양국 협상 과정에서 ‘한국도 관심이 있다’는 입장만이라도 표명했으면 중·러 양쪽에서 모두 환대 받았을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수혜의 폭도 커졌을 것이다. 중·러간의 거래가 끝난 상태에서 뛰어들면 기회주의적이라는 인상을 줄 소지가 있고 협상력이 아무래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때를 놓쳤다는 얘긴가.
“러시아 가스 파이프라인이 베이징을 거쳐 산둥까지 들어오려면 4년 가까이 걸린다. 지금이라도 뛰어들어야 한다. 우리에게도 카드는 있다. 중국에는 산둥과 인천을 해저 가스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하자는 제의를 할 수 있다. 러시아에는 중앙아시아에서 한국 기업이 생산하는 가스를 러시아산 대신 중국으로 보내고, 그 분량만큼을 서해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인천으로 받자는 ‘스와프’ 제의를 할 수 있다. 양국 모두 마다할 이유가 없다. 특히 차얀다 가스전 개발과 관련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가스전 개발을 위해 원유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 원유 매장량이 8000만t이고 연간 150만t을 생산할 수 있다. 이 사업에 아직 아무도 뛰어들지 않고 있다. 한국 기업이 먼저 참여 의사를 밝힐 필요가 있다.”

-북한이 자연스럽게 고립되겠다.
“21세기에 자원은 다목적 무기다. 러~중~한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되고 이 라인을 일본까지 연결하면 북핵을 다룰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 자원 개발에는 한국 기업이 미국 자본과 손잡고 뛰어들면 된다. 이렇게 되면 북핵을 다루는 6자회담 당사자 가운데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가 모두 에너지 동맹이 된다. 북한에는 커다란 압박이 될 것이다.”

-MB 정부 때 추진한 블라디보스토크 라인은 포기해야 하는 건가.
“러시아 장관이 최근 북한 측에 채무 110억 달러 가운데 90%를 면제해줄 테니 나머지 10%로 블라디보스토크 라인을 건설하자는 제의를 했다고 들었다.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토크와 북한 동부를 거쳐 향후 속초까지 연결할 수 있는 라인에 미련이 있다는 얘기다. 블라디보스토크 라인도 북한을 다루는 옵션으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에너지 문제는 항상 배제가 아닌 활용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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