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에게 놀이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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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봄이 와서 날씨가 따뜻해지면 겨우내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고 싶어한다.
한동안 보지 못하던 소꿉친구도 만나보고 싶고 추워서 중단해야 했던 공치기와 미끄럼질도 하고싶다.
또 어른들이 많지 않은 곳에 어린이끼리만 어울려서 놀이도 하고 뛰어 놀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좋아라고 어린이놀이터라는 델 가본다. 그러나 막상 그곳엘 가보면 말할 수 없는 실망에 우울해질 수밖에 없으니 딱한 노릇이다.
도대체 왜 그리도 쓸쓸하고 황량하기만 한 것일까. 반반한 땅 위에 잔디가 곱게 입혀져 있고 여기저기 예쁜 화단이 만들어져 있는 그런 꿈나라 같은 것은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미끄럼틀이나 시소·그네·철봉 따위의 시설들이 이곳저곳 구색 맞춰서 있다고는 하지만 하도 돌보지를 않아서 그런지 온통 낡아빠져 삐그덕 소리만 난다.
땅에는 웅덩이와 고랑이 패었는가 하면 비만 왔다 하면 진창이 돼서 발디딜 수가 없고, 마음놓고 딩굴만한 모래밭 하나 없다.
어떤 곳은 심지어 인근의 연탄쓰레기의 침식 때문에 불쾌해서 놀 기분조차 들지를 않는다.
일부 놀이터엔 급수시설과 화장실이 없어서 다급할 때엔 집으로 뛰어와야 하니 그 불편함이란 보통이 아니다.
그러나 이만한 정도라도 놀이터란 것이 있는 동네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서울시내는 물론 전국의 웬만한 대도시에도 아직 어린이놀이터 시설이 갖춰져 있는 동네는 오히려 예외에 속한다. 놀이터는 고사하고 마음놓고 뛰어 놀만한 공터조차 없는 동네가 수두룩하다.
이런 곳에 사는 어린이들은 불가불 좁은 골목길이나 찻길에서 장난하다가 곧잘 남의 집 장독을 깨거나 사고를 당하기 일쑤다. 그리곤 걸핏하면 『왜 이리 법석들이냐』는 어른들의 호통소리에 이리 쫓기고 저리 밀리게 마련이다.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말이며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어른들은 곧잘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이며 내일의 주인공이라 추켜세운다.
그러나 정작 그 보배와 주인공들을 실질적으로 위하는 첩경은 아름답고 꿈 많고 우량한 놀이터를 많이 마련해 주는 것임을 까맣게 잊고 있다.
어린이날을 경축해주는 당국이나, 막대한 과외수업비를 서슴없이 지불하는 부모들조차 마을의 어린이 놀이터 신설이나 관리엔 그다지 관심을 두는 것 같지가 않다.
서울시는 오는 5월5일까지엔 2백∼3백평 규모의 놀이터 20개소를 더 증설한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시의 현재와 같은 과밀화추세에 비추어 이 정도로는 아직도 미흡하달 수밖에 없다. 또 서울 말고 다른 군소도시의 경우엔 빈약한 예산 때문에 놀이터 신설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설사 더 증설한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관리와 보수를 소홀히 한다면 증설의 의미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현재 반상회나 새마을부녀회 같은 주민조직을 통해 다른 문제는 많은 진척과 발전이 있다고 듣는데 어째서 놀이터 관리와 우량화에 대해서만은 여태까지 이렇다할 효과적인 대책이 서지 않고 있는지 궁금한 노릇이다.
놀이터 증설과 관리를 위한 한가지 유효한 방법으로, 국유지나 체비지를 되도록 많이 어린이놀이터로 할애하거나 이용케 하는 길이 있을 수 있겠으며, 설치자금과 관리비는 주민의 자조와 당국의 지원으로 충당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귀여운 자녀들에게 단 몇 평의 자유로운 땅을 마련해주기 위해 모든 어른들이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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