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차원의 단기국회…"상정하자" "못한다"로 허송 세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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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회기 12일간의 단기국회가 8일 단독국회라는「유종지추」로 끝났다.
통일주체 대의원 관계법 개정안의 처리문제로 빚어진 여야의 대립은 회기 말의 국회운영을 마비시켜 6, 7일 이틀간의 상위공전과 재무·법사위의 여당 단독강행을 낳고 8일 마침내 야당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는 소란을 초래했다.
여 야가 다같이 원치 않은 국회의 이 같은 종국은 한마디로 우리 정치의 경직성과 현실적인 한계성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의 초점이 된「통대」관계법 개정안에 대해 여-야가 맞선 것은「개 정하자」「못한다」의 차원이 아니라 개정안을「상정 처리하자」「안 된다」라는 지극히 단순하고 저차원의 문제였다.
개정안의 내용이나 개정자체의 찬반에 관한 본질문제에는 들어가지도 못한 채「다루어 보자」「다룰 수 조차 없다」는 절차상의 시비가 모처럼의 임시국회를 허송한 쟁점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적법하게 제안된 의안을 상정·제안설명·질의·토론·처리한다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절차가 시비 거리가 된다는 일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체제문제와 직결된「통대법」의 성격으로 보아『한번 건드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판단아래 아예 거론자체를 봉쇄하려는 여당의 입장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회 안에서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는 거론의 통로는 그냥 둔 채 여당의 사정 또는 방침만으로 거론자체를 봉쇄하려는데 분명히 무리가 있다.
반면 개정안을 추진하는 야당 쪽에도 석연 찬은 점이 없지 않다.
우선 개정안 자체가 야망의 확고한 소신이나 결의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다분히 명분에 몰려나온 것이라는 느낌을 주었고, 여당이 흔히 비아냥거리듯 이른바「당내용」이란 비판을 들어야만 했다.
「통대법」을 개 정해야 한다는 문제인식이 확실하다면 안 되는 게 뻔한 개정안 제출에만 추진방법을 국한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또 하나 여당의 단독국회, 여-야 격돌이란 비정상적 상황에서 과거라면 흔히 볼 수 있던 긴장감이나 적대감을 느낄 수 없는 것도 최근의 특징.
이번 경우 쟁점을 두고도 여-야가 타협·대화·협상해 보려는 최소한의 노력마저 보이지 않은 것은 더욱 문제점이다.
당초 이번 국회는 중앙선관위원 선출, 공석상임위원장 선거 등의 일부 절차상 필요와 장기 폐회에서 오는 정치적 불이익을 줄이려는 여당 측과 국회개회를「다다익선」으로 보는 야당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이렇다 할「이슈」없이 손쉽게 열린 단기국회였다고는 하나 하기에 따라서는 현안문제 중 주요한 일부만이라도 알차게 다룰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다만 대정부질의 과정에서 물가문제·저임금문제 등 경제현실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부각시켜 정부의 주의를 환기했다는 게 이번 국회의 성과라면 성과랄 수 있다. <주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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