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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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3천년의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는 자는 암흑 속에 있어라. 그날그날 살아가는 바보처럼』
「괴테」의 시구다. 아득한 3천년은 덮어두고 반세기 남짓한 어제의 역사를 잠시 돌이켜 본다. 3·1운동은「월슨」(미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발단이었다고 오늘의 사람들은 말한다. 일제의 재판기록에도 서두부터 그렇게 적혀 있다.
그 무렵 우리나라는 암흑의 시대였다. 수평선 너머를 내다볼 수 있는 창구도, 눈도, 망원경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목소리가 그 어둡고 밀폐된 한반도에도 들려 온 것이다. 마치 춥고 어둡고 눈이 덮인 땅에서도 새싹이 움트듯이.
3·1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이나 여기에 참가한 사람들은 아마 누구도 그것이 독립을 가져다주리라고 믿지는 않았다. 재판정에서도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조선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민족자결이라는 뚱딴지같은 말로 망상을 일으켜 외국의 웃음거리나 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일본 관헌의 빈정거림은 그럼 직도 해 보인다. 그러나 3·1운동은 일어나고 말았다. 무수한 백의의 민중들은 총칼을 무릅쓰고, 죽음을 넘어 이 운동의 대열에 참가했다.
필경 사람들은 오늘의 성취는 믿지 않았지만 내일의 가능은 믿었던 것 같다.
역사의 냉엄한 교훈이다.
어디서 이런 용기와 슬기와 힘이 생겨났을까. 이것은 역사의「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일본은 헌병을 앞세워 우리 민족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한낱 병졸에 불과한 말단 헌병까지「즉결 권」을 갖고 있을 정도로.
일제는 말뚝 하나를 들고 다니며 우리의 땅을 차지하고 채찍을 휘두르며 생명을 위협하고 또 빼앗았다는 일본인은 무일푼으로 한국에 들어와 단숨에 자작농이 되고 지주도 되었다.
어이없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후손, 공연히 매(태)를 맞은 사람, 하루 아침에 거지가 된 파산자들,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곤욕을 당한 사람들…. 그 수는 갈수록 늘어만 갔다.
「독립만세」소리가 아득히 들려 오자 그 많은 사람들의 울분은 둑이 무너지듯 터져 나왔다.
일제의「무단통치」는 역사의 내일을 내다보지 못하는 아둔함,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 민족은 내일을 믿는 민족인 것 같다.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의 불씨만은 꺼뜨리지 않았다. 우리의 민족적 저력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내일에 사는 민족은 보이지 않는 힘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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