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념 9년 끝에 담배줄기로 「펄프」양산-충북 진천의 권영식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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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끈질긴 집념 9년은 해마다 땔감으로 버려지던 잎담배 줄기 10만여t을 「펄프」로 바뀌게 되었다.
집념의 주인공은 충북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98에 사는 권영식씨(62).
권씨가 잎담배 줄기를 원료로 「펄프」를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66년 가을이었다.
우연히 잎담배 경작기술 강습회에 나가 교육을 받던 중 쓸모 없는 담배줄기에는 「셀루로즈」(섬유소)가 많이 함유되어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권씨는 국민학교 때 배운 『종이원료는 「셀루로즈」부터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무엇인가 해보면 될 것 같은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시설 설비가 있을 수 없어 잎담배 줄기를 바싹 말려 맷돌이나 연자방아로 곱게 간 다음 체를 이용해 걸러내는 극히 원시적인 방법으로 연구의 나날이 계속되었다.
주위 사람들은 권씨를 가리켜 「체머리」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날마다 체로 담뱃가루나 거르고 앉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었다.
가족들까지도 「미친 짓」이라며 말렸다.
누가 뭐라 해도 권씨는 집념을 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연구비가 떨어질 때는 도리가 없었다.
권씨는 심지어 남의 집일을 거들고 받은 품삯까지도 모조리 연구비에 충당할 정도였다.
74년8월24일 권씨는 상공부에 자신이 만든 「펄프」를 보이고 드디어 「양질의 펄프」라는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국립표준 연구소와 임업시험장의 공인시험 분석까지 거쳐 권씨는 실용신안 특허 제4236호를 얻게 되었다. 권씨의 눈에는 눈물이 어렸다.
권씨는 가산을 정리, 동업자를 구한 끝에 진천읍 벽암리128의 하천부지 3백99평에 건평 90평 규모의 공장을 세우고 「대안 펄프공사」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76년6월부터 첫 생산을 시작, 하루 1·5t씩의 「펄프」를 만들어 동양제지 및 금강「슬레이트」에 납품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5개월 뒤인 12월, 일본에 있는 친지를 통해 『담배 줄기로 만든 종이를 「다다미」밑에 깔면 좀이 안 생긴다』는 설명서와 함께 수입해줄 것을 일본 삼화통상(병고현주 본시상물부 2정목4)에 요청했다. 『곧 5만「달러」어치를 보내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곁들여 삼화통상은 연간 20만「달러」이상씩을 수입할테니 생산량을 늘리라고 까지도 당부했다.
권씨는 작년4월 5천만원을 들여 제조시설 확장공사에 착수, 「펄프」생산규모를 하루5t으로 늘리고 제지시설까지 갖춰 본격적인 생산에 착수했다.
이곳서 생산되는 「펄프」는 「셀루로즈」함량 52·2%, 질도 활엽수나무로 만든 「펄프」와 거의 맞먹는다.
권씨의 집념은 매년 버려지는 10만여t의 잎담배 줄기를 5만t의 「펄프」로 바꿔 연간 2천만「달러」의 외화를 절약하게 된 것이다. 【진천=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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