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여성생활용품』수집-박성희 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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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무심코 모으다 보니 꽤 모아졌다. 실은 욕심을 내어 시작한 것이 아닌데 30여년의 세월이 그렇게 쌓인 것이다. 오히려 요즘에는 전처럼 감동적인게 없다. 아무리 희한한 것이라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새로운 맛이 없어지는 것 같다.
사람이 살다보면 몹시 궁할 때에 부딪친다. 그럴 때는 아무리 값진 것이라 해도 아깝지 않다. 우선 값나갈 것을 들고 일어서기 마련이다. 내 딴에 알뜰한 물건들은 그렇게 해서 없애버렸다. 가끔 그것들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이젠 덤덤해졌다. 눈에 드는 물건도 없고 요즘 같은 값이어서는 취미 삼아 다시 갖기란 어렵게 됐다.
말하자면 남아있는 것들이란 궤짝 속에서 밀려다니던 물건들인데, 요즘엔 그것마저 귀해졌다하므로 하나하나 손질해 보곤 한다.
아직 전부를 헤아려보진 않았으나 각종 비녀가 50∼60개, 노리개가 몇십개, 화장도구며 귀고리·반지·담뱃대 등도 숫자상으로 꽤 되고…. 이렇게 옛 여성들의 생활용품이 중심을 이룬다.
이런 물건을 만지고 있노라면 우리나라 옛 여성들은- 물론 상류 계층에 국한되었겠지만 - 취미도 다양하고 멋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들의 자개(나전칠기)가구만 보더라도 요즘의 신식 가구보다는 훨씬 정서적이어서 그들이 매만지던 손길을 느끼게 된다.
여성의 생활용품은 귀금속일수록 귀하게 여기기 마련이다. 해방 직후만 하더라도 그것은 주로 금은방에서 값싸게 거래됐다. 옷 해 입으려고 꽁쳐 놓았던 돈으로 대신 사버렸던 즐거움이며, 사채라도 얻어 쓴 뒤 그 부담스런 고통을 도리어 즐거워하던 일. 요즘같이 골동상가를 기웃거려야 얻는 것이었다면 아예 손대지 않았을지 모른다. (69세·경성여상 졸업·주부·서울 강남구 신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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