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2년, 「베이루트」에 또 포성이-주섭일 특파원 전장 「레바논」을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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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년만에 「베이루트」에 다시 포성이 울렸다.
거리는 75∼76년간 기독교 우파와 회교 「팔레스타인」좌파간의 유혈 전쟁의 악몽이 이번 포성으로 되살아나는 듯 공포감마저 감돈다.
「레바논」의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진주하고 있는 「시리아」군과 우파군간의 충돌이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시리아」군은 소련제 「미그」기와 「탱크」를 동원, 우파군 진지 뿐 아니라 우파 지도자들의 저택에까지 공격을 가했다.
8일 밤 휴전이 공포되었지만 충돌은 계속되었다. 현재까지 인명 피해는 사망 1백50명·부상 2백50명.
충돌을 야기한 직접적 이유는 「시리아」군의 경비초소 설치 때문.
「레바논」우파군이 주둔하고 있는 「베이루트」교외 「파야디」지역에 순찰 강화를 이유로 갑자기 「시리아」군이 초소를 만들자 7일 쌍방의 총격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번 충돌의 근본적 원인은 우파군이 최근 현대무기를 입수하면서 모병을 한데 있다.
우파 지도자 「살람」전 대통령은 「시리아」군의 철수를 계속 주장하면서 「시리아」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시리아」는 이같은 우파군의 움직임에 대해 불만을 표시해왔다. 「레바논」엔 「아랍」4개국 평화군이 진주하고 있지만 총 3만명 중 2만8천5백명이 「시리아」군이다.
오늘날 「베이루트」의 모습은 차라리 「시리아」군 점령하의 도시 같다.
공항에서 「베이루트」시내까지 들어오는데도 총 7개소의 「시리아」군 초소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시내 도처에는 지난 7일 실시된 「시리아」대통령 선거를 위한 「아사드」대통령의 선전「포스터」가 무수히 붙어 있다. 뿐만 아니라 도처에 「사다트」「이집트」대통령의 초상화도 나붙어 있었는데 그의 머리에는 미국식 모자에다 한쪽 눈에는 「다얀」식 안대를 그려놓아 강경한 반「사다트」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럴 때 과연 「시리아」군은 주둔 만기인 4월말에 물러날 것인가? 「예스」라고 말하는「업저버」는 없었다.
최근 「아사드」는 「레바논」기독교 정권을 다시 수립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밝힌바 있다.
여하간 국방차관·군 참모 총장을 포함한 「시리아」사절단은 이번 충돌의 해결안을 제시했다. 「파야디」우파 군 기지를 「시리아」군에 인도하라는 것 등이다.
이같은 요구에 대해 우파군이 백기를 들지는 아직 의문이다. 또한 협상이 잘 돼나가 발등의 불이 용하게 꺼진다 해도 「레바논」의 장래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전 국민들이 전쟁을 다시 해서는 안되겠다는 의지와 하루빨리 「베이루트」를 복구하자는 열망을 볼 수 있었다는 희망적 사실뿐이다.
이제 「레바논」은 과거의 「레바논」이 아닌 「시리아」와 관련을 갖는 회교 「레바논」으로 내다봐야할 시점에 서 있다는 것이 관측통들의 공통된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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