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대학의 전 대학 확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국의 4년 제 대학을 오는 82년까지 모두 실험대로 지정키로 한 정부의 방침은 그 동안 추진돼온 대학교육 개혁이 실험단계를 넘어 확대단계로 넘어서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변화의 「템포」가 가속화되고 사회적인 이동성이 날로 늘어가고 있는 현대사회에 있어서 대학교육이야말로 잠시라도 정체되거나 폐쇄적인 상태로 방치될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은 재언 할 필요가 없다.
이런 견지에서 학생의 계열별 모집·일부 우수학생에 대한 졸업연한의 단축·졸업에 필요한 학점의 감축·복수전공제의 실시·다원적 학기제의 운영 등을 골자로 하는 실험대학의 확대는 원칙적으로 대학교육의 발전과 연결될 수도 있는 진보적인 조치다.
실험대학제의 실시에 따른 교육개혁은 대학에 있어서 학사행정의 특수성과 자율성을 신장시켜줄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보다 큰 선택의 범위를 제공하고 동시에 전공의 폭과 깊이를 더해줄 수 있는 등 많은 잇점이 있다.
그러나 실험대학의 제도적 확대만으로 소기의 성과가 그대로 나타나리라는 보장은 없다.
새로운 제도의 전반적인 보급에는 그 제도의 취지가 구현될 수 있는 유형무형의 여러 가지 전제조건, 그 중에도 특히 재정적인 뒷받침이 없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실험대학구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학의 시설·교수·학구분위기 등 대학전제의 전반적 여건이 개선돼야 한다.
한 학생에게 동시에 두개의 학사자격증을 주는 경우 그 자격이 부실한 것이 되지 않도록 폭넓은 선택과목을 설치하고, 연중무휴의 강의를 할 수 있는 대학내부의 시설이나 실험실습기재, 그리고 도서관 시설 등의 확보가 필수조건이다.
특히 다양한 전공 및 부전공과목을 이수하게된 학생 개개인에 대해서 충실한 교과지도와 개인지도를 다할 수 있도록 우수한 자질을 갖춘 교수가 다수 배치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전반적인 대학의 실정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동안 선도적으로 실험대학제를 실시해온 일부 종합대학의 경우에도 이러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채 제도부터 성급히 도입함으로써 적잖은 부작용만을 빚고 있다는 인상을 지을 수 없다.
국립서울대학의 경우만 해도 계열별모집으로 입학시킨 학생들에 대한 학과배정 자체가 아직도 제한된 과별수용능력 때문에 성적순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학생들 자신의 지망이나 적성을 충분히 반영시키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규모와 시설이 월등하다는 국립대학에서 마저 이렇듯 복수전공제도를 실시할만한 준비태세가 갖추어지지 않은 것을 볼 때, 나머지 모든 대학에 이 제도를 확대한다해서 얼마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는지는 근본적으로 의문이라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실험대학의 확대에는 먼저대학재정과 교수정원의 획기적인 증강을 전제로 하되 어디까지나 획일적 실시를 탈피하여 개개대학의 자율적 판단과 책임 하에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탄력성을 갖도록 할 필요가 있다.
현재 5년째에 접어든 실험대학구상이 정말로 탁월한 성과를 입증할 수 있다면 다른 대학은 당국의 권장이 없어도 이 모범을 따르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처럼 탁월한 성과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만한 아무런 평가보고서에도 접한 일이 없을뿐더러 국·공·사립을 막론하고 대학의 재정과 교수정원·시설문제 등은 여전히 대학설치 기준령에도 미달되는 것이 실정이 아닌가.
오늘날 세계 각국의 대학교육에 대한 요구는 넓은 기초교양에 바탕을 두되 세분된 전공분야에 대해서도 상당한 깊이를 갖춘 학생을 양성하는데 있다.
이런 점에서 문제의 실험대학 구상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복수전공제의 채택과 졸업에 필요한 학점수의 감소 및 우수학생의 졸업 연한 단축조치 등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대학교양과정의 고교과정으로서의 이월, 대학수업연한의 제도적 개편, 대학졸업자격인정의 공신력부여제도 신설 등 고등보통교육 및 대학교육제도 전체의 근본적인 개혁을 검토할 때가 왔다고 본다.
현행 실험대학구상을 섣불리 전 대학에 확대하기보다는 지난 5년간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종합 평가하여 이상과 같은 근본적 제도개혁에의 밑거름으로 삼기를 우리는 권장하는 바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