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의 정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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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외무부는 한미간 외교갈등의 조속한 회복을 당면 외교목표의 하나로 설정했다고 한다.
재작년 말부터 표면화된 박동선 사건으로 인해 지난 1년여 한미관계는 극도로 소원해졌다. 이러한 양국관계의 손상이 실질적인 상호이해관계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그야말로 한낱 사고에 기인했다는데 더욱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 같다.
국제관계에서는 흔히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 한다.
한미관계라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상호간의 이해관계가 변화한다면 두 나라의 관계양식도 의당 바뀔 수는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한미간의 관계에선 과연 상호간의 이해가 그토록 변화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변화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변화는 주로 우리의 국력이 그동안 상대적으로 증진된데 따른 것이다.
그 결과 이제 우리는 외교·경제적으로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는 않아도 좋을 정도가 되었다.
심지어 경제적인 면에서는 부분적으로 한국이 미국의 경쟁자로 부각되는 경우마저 없지 않다.
또 한국의 안보에 대한 양국의 기여도도 크게 변화되고 있다. 미국의 역할이 축소되고 우리의 역할과 부담이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 더욱 많다. 일·중·소의 3대 세력에 둘러싸인데다 남북으로 갈리기 까지한 현실에서 미국의 조정역할이 지정학적으로 불가결하다는 사실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더구나 중소가 경쟁적으로 북괴를 지원하고 있는 한 미국의 대한공약과 군사적 실재는 이 지역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하고 한반도의 전쟁재발을 억지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측에서도 동북아의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그들의 국익에 비추어 한국안보에 대한 두 나라의 이해는 여전히 일치한다.
뿐만 아니라 부분적인 마찰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의 경제관계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상호의존이 심화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한미우호관계의 실질적인 바탕은 부분적인 변화요인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크게 달라질 이유가 없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최근의 한미간의 외교갈등도 실질적인 이해의 충돌이 아닌 순전히 박동선 사건 등을 둘러싼 상호간의 감정악화에 기인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러한 감정상의 문제는 빨리 해소될수록 좋다. 감정문제를 오래 끌어봐야 상호간에 이로울 것이 없다.
최근 우리측의 박동선 사건처리에 대한 융통성 있는 태도는 비록 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불필요한 악감정 해소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 보여진다.
미국측에서도 적어도 정부는 불필요한 악감정을 조속히 해결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아직은 미의회와 언론의 태도가 문제인데 그 경우에도 솔직하고 성실하게 상호간의 오해를 해소하려고 노력하는 이상의 묘방은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단순한 감정문제도 그것이 심화되고 장기화되면 실질적인 이해관계마저 그르치고 만 예를 우리는 역사에서 숱하게 목도했다. 정작 그러한, 더 불행한 사태에까지는 가지 않도록 박동선 사건을 올해에는 기필코 청산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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