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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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단테」의 옛 연인이었던 「베아트리체」는 「아라비아」역의 달의 9일, 「시리아」역의 9월, 「이탈리아」역의 13세기의 제90년, 즉 l290년6월8일에 죽었다.
이렇게 세상에는 「캘린더」가 많다. 연시도 나라에 따라서 가지각색이다. 「시저」의 시대에는 1년의 시작은, 3월부터였다.
옛 「이집트」사람들은「그레고리」역의 7월19께를 1년의 시작으로 잡았다. 설날도 나라에 따라 다른 것이다.
「캘린더」가 다르고 관습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캘린더」상의 시간이란 정확한 것이 못된다. 시계바늘로 재는 시간도 실제의「시각」과는 다르다. 「시간」이란 원자시계를 기준으로 한 원자시를 말한다.
한편 시각이란 지구의 자전에 입각하고 있다. 따라서 오래가면 시간이 시각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윤초가 생긴 것도 이런 때문이다.
결국 설날이 꼭 양력 12월31일의 24시간이 지난 다음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보는 것부터가 하나의 약정이나 관습을 따르는 것뿐이다.
영국사람들은 정월초하루에도 원단이라고 색다른 행사를 하지 않는다. 이날은 공휴일도 아니다.
하기야 양력설날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임의로 잘라서 만들어낸 날일뿐이다.
구정은 이와는 다르다. 그날은 입춘과 함께 다가온다. 다시 말해서 한해의 농사가 곧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는 날이기도 하다.
도시 설날의 「설」이란 말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는 옛 뜻이 들어있다.
옛 풍속에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서는 부정을 타지 않도록 깨끗이 몸을 닦고 집안에서 근신하는게 상례였었다.
그러니까 설날은 옛사람들에게는 1년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날이었다. 첫 번 드는 신일에는 비가 알맞게 오게 되도록 빌었고, 오일에는 농경용 마필이 잘 있도록 해달라고 빌었다. 자일에는또 쥐가 곡식을 너무 좀먹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런 기곡축년에서 설날에 얽힌 관습이며 행사들이 생겨났다고 육당이 풀이한 적이 있다.
기가 있으면 반드시 보가 따르는 법이다. 그것은 농사에서만 아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다.
이래서 세배의 관습도 생겨났다. 설날은 구정이라야만 한다는 까닭도 이런데 있다.
요새 구정을 공휴일로 만들자는 소리가 높다. 놀자는 것을 싫다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나온 소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좋은 옛 풍습을 따르자는 뜻에서 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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