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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유주현 김세종 화
경이 짜증을 내면서 밖에 나가 있으라고 호통을 쳤건만 자칭 장녀(장녀)라는 그네는 들은 척도, 민망해 하지도 않고,
『이런 말씀 함부로 지껄여 죄송하지만 같은 여자끼리도 황홀해서 그대로는 못보고 있겠습니다. 어쩌면 뒷맵시가 이리도 예쁘신지 모르겠네요. 볼기가 탱탱하셔서 만지면 탁 터질 듯 싶군요.』
왕실의 피가 흐르셔서 그럴까 몰라. 하긴 왕실 분들은 하체가 짧은 게 특징이라는데 아씨는 하체와 상체의 길이가 비슷하게 쭉 뽑혔네요. 꾸부리지 마셔요. 누가 본다고 부끄러워하세요, 여자끼린데. 저쪽으로 가세요. 저 물은 냉천골(냉천골) 약수터에서 길어왔어요, 살결이 부드러워진다는 물이예요. 국화꽃 한 바구니를 물에 띄었습니다. 물이 너무 뜨거우면 저 국화송이들이 익기 때문에 미지근한 정도로 데웠어요. 그래야만 향기가 좋고 살갗도 윤이 납니다. 어서 저리로 가세요.』
장녀는 자신도 옷을 훌훌 벗어 팽개치고는 경을 욕조 쪽으로 유도해가는데 그 몸매 역시 경에게 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욕조는 회색빛이 약간 감도는 흰 대리석으로 깎아 만든 과히 크지 않은 가마형국이었으며 미지근한 물이라지만 모락모락 오르는 김이 꽤 짙은 것을 보면 따끈할 만큼 데워진게 틀림 없으며 한 바구니나 되는지 한바가지 정도인진 알 수 없으나 노란 국화송이가 그 물위에 그득 떠서 느릿느릿 맴돌고 있고 그래서 그윽한 국향(국향)이 장녀의 표현대로 황홀할 지경인게 사실이었다.
『여보게!』
『네, 아씨.』
『도대체 무슨 꿍꿍이 속인가?』
『꿍꿍이 속이라뇨?』
『나라나 종족은 달라도 예절이란 비슷 슷한 법인데 이 천추에 한을 남길 비통에 싸인 몸에게 목물을 하라는 자네 속셈이 뭐냐 말일세.』
『제 뜻이 아니와요. 거역하실 수도 없는 처지시구요.』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김과 좀 지나치게 짙은 국화 향기 속에서 두 여인의 나신(나신)이 야리얄깃 서로 어울리고 있는 게 마치 꿈속의 어떤 환상인 양 그 형체가 뚜렷하기도 하고 떠 어찌 보면 유려한 선(선)과 색의 조화가 꽃구름처럼 가벼이 부유(부유)하는 것 같아 만약 그 광경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있다면 필시 제 정신을 잃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사실은 그때 그런 눈이 날카롭고 음탕한 빛을 발산하고 있는 줄을 장녀 그 여자는 알고 있으면서 그처럼 대담한 행동을 했던 것이다.
청관에 새로운 여자가 들어오게 되면 그것은 거의 정해진 순서의 행사였다.
목욕을 빙자하여 그 살갗과 몸매와 또 비원비처(비원비처)의 생김새를 마호 그가 직접 관찰한 다음 상대가 아음에 안 들면 부하들에게 선심을 쓰고 물론 마음에 들면 그날밤 자신의 노리개로 삼게 돼 있었다.
이쪽에서는 눈에 안 띄는 위치에 그런 구멍이 마련돼 있었다. 마호 그뿐이 아니라 저들 종족은 우선 눈으로 즐기는 게 절차처럼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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