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근하는 죄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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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읽은 것 같다. 죄수들이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고독도 환경도 아니다. 단조로운 일들의 끝도 없는 반복.
가령 여기에 있는 흙을 저리로 옮기고 다시 그것을 이리로 옮기는 일 탈옥. 죄인들은 그 일이 싫어 탈옥도 하고 때로는 자살까지 한다는 것이다. 『죽음의 집의 기록』이란 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자신이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을 하면서 구상한 작품이다. 그는 결국 특사로 4년만에 비참한 생활을 벗어났지만 그 단조로운 일들에 대한 절망적인 체험은 끝내 잊혀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늘날의 행형제도는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의 문제를 놓고 상당한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범법·범죄에 대한 복수나 처벌만을 목적으로 하던 원시시대의 제도는 이제 어떤 나라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보다는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 인간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주려고 한다. 그것이 오히려 사회의 범죄를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석방과 같은 조치는 바로 그런「아이디어」의 하나다. 반성과 뉘우침의 신념이 뚜렷한 자는 형을 마치기도 전에 서둘러 사회에 돌아가 적응하도록 풀어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심리학자들의「카운슬링」과 같은 방법으로 심리적 치료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은 1970년인가 7백명의 심리학 전공자들을 교도소에 배치한 일도 있었다.
「벨기에」「프랑스」「덴마크」「스웨덴」과 같은 나라에선 죄인들의 정신적인 치유를 도와줄 자원자들을 모집하기도 한다. 이들은 죄수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야말로 자연스럽게「개심」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죄수들에게 후하기로는 「스웨덴」을 따라갈 나라가 없을 것 같다. 한 여름이면 감옥 자체를 피서지로 옮기고 그 곳에서 휴가(?)를 즐기게 해준다. 정기 귀가일이 있는가 하면, 감옥에서의 생활에도 자유를 보장해 준다. 이런 상황이라면 다른 나라에선 감옥에 자진해서 들어가는 일도 없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행형의 목적은 보복이나 고통에 있기보다는 인간회복에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 나라에서도 교도소 복역자들에게 교도소 바깥의 교육장을 통근을 하며 기술 훈련을 시키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제도로 더욱 발전했으면 좋겠다.
그들도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죄를 미워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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